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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설교와 주석의 참조: 설교 준비단계에서 다른 사람의 설교와 주석을 어떻게 활용할까?

4.1 다른 사람의 설교에서 배워라

설교를 준비할 때 같은 본문으로 메시지를 전한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들어보는 것은 유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유익한 이유는 내가 생각지 못했던 관점을 다른 설교자로부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못하다. 항상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자신의 이해의 지평을 가지고 본문을 대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해석한 본문에 대한 관점은 언제나 편향적일 수 있고, 때로는 일그러져 있을 수 있다. 자신이 해석한 본문의 의미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그러한 태도는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낳고 타인의 생각을 포용하지 못해서 결국 스스로 진리가 아닌 것의 포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설교자는 자신의 관점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보면서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언제나 해석은 개인의 작업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해석 공동체의 작업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개인은 언제나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 쉽기 때문이다.1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듣게 될 때, 우리는 더 깊고 폭넓은 성경의 해석에 접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 설교가 건전한 신학적 훈련과 성경 해석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설교자의 설교라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쓰레기와 같은 설교들이 널려 있어서 오히려 설교자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설교들도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정말 좋은 주석에 근거하여 설교하는 설교자들의 설교를 듣는 것은 설교를 준비하는 설교자에게 아주 큰 유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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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해로운 면도 있다.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듣게 될 때 때때로 그 설교가 너무 강력한 나머지 설교자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기 쉽다. 그래서 결국 설교를 준비할 때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게 되는 단점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각기 다르게 창조하셨고 그래서 각각 독특한 방법으로 설교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나와 맞지 않는 설교를 들었을 때 그것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설교가 옥쇄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다윗처럼 사울의 갑옷과 투구를 벗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골리앗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한번 듣게 된 설교를 쉽게 떨쳐버리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스스로 내게 맞지 않는 사울의 갑옷과 투구를 벗고 나만의 방법으로 나아가려는 자세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설교를 참조한다면, 유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듣게 된다면, 그리고 그 설교가 너무 좋게 느껴진다면, 우리들의 마음에 그 설교를 그대로 사용하고 싶은 욕심 또는 탐욕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단 그 설교는 그 목사님이 그 교회의 청중들을 위해서 만든 설교이지, 우리 교회를 위해서 만든 설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청중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데, 청중이 다른 그 메시지를 그냥 고민 없이 똑같이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설교자는 청중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민을 해야 함이 마땅하고, 그것을 분별하여 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다른 청중들을 위해서 준비된 메시지를 그냥 사용하는 것은 술 맡았던 관원에게 전달되어야 할 메시지를 떡 맡았던 관원에게 전달하는 것처럼 잘못된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각 사람을 각각 다르게 창조하셨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은 없으며 각각 독특하게 창조하셨다. 따라서 각각의 사람에게 맞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식이 있다. 그 다른 사람에게 유용했고 효과적이었던 것을 내가 사용했을 때 똑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더 뛰어난 방법이 있다. 다윗이 사울의 갑옷과 놋 투구를 쓴 것이 아니라, 물맷돌을 던졌을 때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의 설교를 보면서 본문을 어떻게 요리했는가를 볼 수 있고, 그리고 그 메시지를 어떻게 청중들에게 적용시켰는가를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비판적으로 그 설교를 분석해보아야 한다. 과연 그 설교의 요소들이 적절했는지, 그리고 그런 것들이 나의 청중들에게 적절할 수 있는지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본문을 바르게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 설교를 통해서 본문이 어떻게 잘못 이해되고 잘못 적용될 수 있는지도 보아야 한다.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必有我師焉)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는 공자의 말처럼, 그 어떤 설교도 설교자에겐 스승이 될 수 있다. 좋은 것은 본받아야 하고, 잘못된 것은 청중들을 교정하여야 할 내용으로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표현이나 아이디어들을 다른 사람의 설교에서 빌려올 수 있다. 그렇다면 설교 도중에 설교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의 설교의 표현이나 아이디어에서 좋은 인사이트를 얻었다고 밝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항상 밝혀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양심의 문제이다. 대놓고 다른 사람의 설교를 그대로 가져다가 쓰는 것과 좋은 점들을 차용하여 선별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설교의 틀 속에서 이용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런 행위마저도 표절행위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설교라는 장르의 특성 상 이해되는 것이 옳다. 물론 설교자의 양심에 따라 할 일이다.

대부분의 설교학 교재에서는 내가 먼저 나름대로 본문을 연구하고 설교를 작성한 후에 나중에 설교나 주해를 참조하라고 권고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다른 사람의 설교가 강하게 설교자의 머릿속에 남아서 설교자의 마음을 지배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설교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도록 훈련이 된 설교자라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이 시대에 정말 좋은 설교자라고 생각되는 몇 명의 설교자들을 나의 설교 선생으로 삼았다. 목사가 되고 난 뒤에 그래도 꽤 오랜 기간 동안 설교하는 일을 해왔는데, 나의 설교는 언제나 힘이 없었다.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때로는 공허한 느낌마저 들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목회하는 몇몇 목사님들의 설교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 내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분들의 설교와 나의 설교를 비교해보았다. 내가 전하는 설교에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 그때에서야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그분들의 설교 오디오 파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다니면서 그 설교를 들었다. 그리고 그분들의 설교가 내용적으로, 그리고 표현 방법에서 어떤 장점들이 있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그분들의 장점들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아직도 나는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분들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대로 답습한 것은 아니고, 비판적으로 평가해가면서 배울 것은 배우고 오히려 더 개발시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지금도 뛰어난 설교자들의 설교를 통해서 배우고 싶고, 그런 설교들을 만나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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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정성국, 『묵상과 해석』(성서유니온, 2018), 275-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