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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토타 스크립투라

종종 설교자들 가운데에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골고루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설교본문을 의도적으로 많이 설교되지 않는 본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생각은 참으로 귀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내 입맛에 맞는 본문만을 설교하는 것보다는 성경 66권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tota scriptura)이라는 종교개혁적 관점을 반영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설교자 본인도 재대로 성경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제대로 본문을 해석하지 못한 채, 억지로 무리한 해석의 설교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아쉽다. 토타 스트립투라(tota scriptura)의 정신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성경 전체를 성도들에게 설교하는 것에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느 한 성경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설해 나가는 동안 성도들은 다른 성경을 접하지 못하게 되어서 사실상 모든 성경을 추구하려는 계획이 하나의 성경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성경을 외면하게 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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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타 스트립투라(tota scriptura)의 정신은 단순히 성경 모든 책들을 하나씩 해석해 나가는데서 구현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느 한 본문을 설교한다 할지라도 성경 전체의 가르침의 빛 속에서 해석할 때 구현되는 것이다. 성경을 어느 한 구절이나 몇몇 구절에 의지하여 해석하는 것은 잘못될 수 있기에, 성경 전체에서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 토타 스트립투라(tota scriptura)의 정신일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가 성경 전체를 다 골고루 설교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과도한 개인적 욕망이 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설교자는 만능이 아니며 모든 본문을 잘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꾸준한 연구를 통해서 성경 전체를 다 다루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문자적인 의미에서 모든 성경을 다 설교해야 할 이유는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설교자가 전해야 하는 청중들의 상황에 맞는 바른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어떤 한 구절로 설교한다 할지라도 성경 전체의 가르침의 맥락에서 설교한다면, 비록 다른 구절의 성경을 본문으로 다룰 기회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사무엘서의 말씀을 가지고 연속설교로 세 번씩 강론했다. 물론 같은 교회에서 한 것은 아니고, 각각 다른 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종종 사무엘서의 메시지를 중복해서 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어떤 본문보다도 사무엘서의 메시지를 더 많이 강론한 셈이다. 하지만 사무엘서를 강론할 때에 사무엘서의 메시지만 다루지는 않았다. 성경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가를 살폈고 청중들의 상황에 필요한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살피려고 노력했다. 나는 구약의 선지서들 중에서는 설교를 많이 하지 않았다. 사실 선지서는 내가 다루기 힘든 내용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지서의 메시지들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사무엘서를 설교하는 도중에 선지서의 말씀들을 사용하였고 그 빛 아래서 전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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