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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서원 (삿 11: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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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다면 자기 집 문을 열고 마중 나오는 자를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을 하였고, 그 결과 입다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번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일이 오늘날 발생했다면, 어떤 광신도가 어처구니 없는 황당한 일을 했다고 당장 뉴스에 보도될 것이다.

도대체 입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기를 원하시는가? 정통적으로는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아무리 손해가 된다 할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함을 배워야 한다고 해석한다. 화장실을 가기 전의 마음과 다녀온 후의 마음이 다른 게 사람인데, 하나님께 한 약속은 결코 어겨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이 이야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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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해석의 난점은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죽여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잔인하고 무자비한 폭군이 아니라, 사랑이 많으시고 긍휼이 많으신 우리들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다. 결코 하나님은 우리들을 짓밟아버리면서 좋아하실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게 참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의 거짓 종교의 신과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다.

입다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사용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가 행한 모든 일들이 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옳은 일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사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행동했던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

입다가 했던 서원은 잘못된 서원이었다. 서원이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결단하는 것이다. 마치 야곱이 벧엘에서 했던 서원처럼 말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해주시겠다는 약속을 들었을 때, 너무나도 감사하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다면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서원을 하였다. 하지만 입다는 하나님과 흥정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신다면, 번제를 드리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서원은 하나님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행위이다. 이러한 서원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리 만무하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입다에게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그 개선의 행령에 환영하러 나온 사람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외동딸이었다. 그때 입다는 회개하여야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신앙적 완고함 가운데, 자신의 딸을 죽이고 말았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완고함 속에서 잘못되고 불행한 일들을 반복하는 게 우리들의 잘못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셨다. 그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