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잠 8:1-21)

도수장으로 가는 소 (잠 7:1-27)

1절에서부터 3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마치 사람인 것처럼 소리를 질러서 외치고 있고 부르고 있는데, 지혜가 지금 자꾸만 떠들고 있는데, 어디서 그렇게 외치고 있느냐? 길가 높은 곳에서도 지혜가 외치고 있고, 네거리에서도 지혜가 외치고 있고, 성문 곁에서도 외치고 있고, 문 어귀에서도 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지혜가 외치고 있다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안방에서는”이라고 기록? 안방이라고 하는 말은 안 나왔으니까, 안방에는 지혜가 없는 것일까요? 학교 건물에는? 학교 건물이라고 하는 말을 표현하지 않았으니까, 학교 건물 속에 들어가면 지혜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일까요? 들을 수 없는 것일까요? 시장에 가면, 여기 시장이라고 하는 말을 표현하지 않았으니까, 시장에 가면 그런 지혜의 말을 들을 수 없고,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길가로 가야만 하고, 네거리를 가야만 하고, 성문으로 가야만 하고, 꼭 여기서 언급한 바로 그 장소로 가야만, 그래야 우리가 지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뜻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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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몇몇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들어서 지금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대표적인 장소들, 몇몇 곳을 들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렇게 몇몇 장소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지혜라고 하는 것이 꼭꼭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가 소풍에 가서 보물찾기 하듯이, 그 보물을 찾으려면 조그마한 이곳저곳 뒤져가면서, 그 보물을 숨겨놓았는데, 그 숨겨놓은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만, 그래야만 겨우 운이 좋은 사람이 찾을 수 있듯이, 지혜라고 하는 것도, 지혜를 얻기 위해서, 지혜를 듣기 위해서, 우리가 바로 이곳에 가서 지혜를 들어야 하고, 지금 여기 열거된 바로 그 장소에 가서, 우리가 지혜를 들어야만, 겨우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말씀한 것은, 바로 이곳에서만 지혜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소풍을 가면, 보물을 숨겨놓고, 보물을 숨겨놓은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보물을 찾으려면, 저 밖으로는 가지 말고, 나무 주변이나 돌 주변이나 아니면 의자 주변이나 이런 데서 찾아봐라”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왜냐하면 선생님이 거기에다만 보물을 숨겨놨기 때문에, 아이들로 하여금 거기서만 찾으라. 괜히 저 멀리 가지 말고, 여기서 내가 숨겨놓은 바로 그곳에서만 보물을 찾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말씀은 지혜라고 하는 곳이 어디에 있느냐? 바로 여기에만 있으니까, 여기서 지혜를 들으라고 하는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한 것이 아니고, 이것은 어디에서나 지혜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대표적으로 우리가 늘 만나는 장소를 열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수사법을 가리켜서 대유법이라고도 하고 제유법이라고도 하는데요. 대표적인 거 몇 개만을 선정해서 전체를 나타내는 방법이죠. 그러니까, 길가에서, 길가라고 하는 곳이 어느 곳입니까?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길가예요. 성문이 어디입니까?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곳이 성문이에요. 네거리가 어딥니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그 네거리입니다. 저 궁중에 지혜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고, 저 고대광실에 지혜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그 길가에서, 성문에서, 그리고 네거리에서 이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있는 바로 이곳에, 우리는 그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가 어디에 있는가? 교회당 안에 들어와야만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가정에서도 지혜를 발견할 수 있고, 여러분들이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도 지혜를 발견할 수 있고, 우리가 지금 거래하는 거래처 속에서도 지혜를 발견할 수가 있고, 우리가 사는 삶 일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오늘 1, 2, 3절에서 그렇게 표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30장 11절에서부터 14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그 말씀이 어디에 있는가? 아주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는 거에요. 누구나 다 알 수 있게 완벽하게 다 공개되어 있다고 하는 겁니다. 어느 유명한 선생님에게 찾아가야만, 그 선생님에게서 겨우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위대한 스승에게 찾아가야만 그 위대한 스승으로부터 겨우 하나님의 오묘한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든지 그냥 보통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능히 행할 수 있게 아주 가까이 있는 말씀으로, 어려운 말씀이 아니라 아주 쉬운 말씀으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고 신명기 30장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문제는, 모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실 우리에게 지혜가 다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들에게 분명히 알려주고, 분명하게 알게 해주고, 쉽게 깨닫게 해 주셨는데, 그래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말씀을 우리가 마음속에서부터 억압에 짓눌러 버리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나는 그 말씀 몰랐는데요. 나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요.”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복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이 화라고 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싫어하시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자꾸만 우리들의 마음을 짓눌러버려서 마치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양 그렇게 위선적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짓눌러 버리고 있는 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무엇이냐면, 바로 선악과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향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가 있는데, 에덴 동산에 있는 그 나무의 모든 실과들은 너희들이 다 먹을 수 있지만, 딱 하나, 다 못 먹게 하고 딱 하나만 먹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다 먹어도 되고 아무거나 다 먹어도 되는데 딱 하나만 먹지 말라고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 지식의 나무 선악 지식의 나무의 열매라고 하는 것, 그게 과연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튼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서 열리는 그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마라 그랬어요. 이 말씀이 어렵습니까? 이해하지 못할 말입니까? 깨닫기 어려운 말이에요? 애기들도 알 수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말이에요. 그냥 먹지 마라 그랬으면 안 먹으면 돼요. 안 먹으면 돼.

그런데 사탄이 하와를 유혹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그러면서 꼬시기 시작합니다. 네가 만일 이것을 먹는다고 한다면,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유혹할 때, 이 하와가 그 사탄의 말에 속아 넘어가요. 몰라서 넘어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몰라서 넘어간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도 듣지 못한 것이냥,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인냥, 그냥 먹고 잘못된 길로 빠져가는 것이죠.

우리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지혜의 말씀을 모른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어요. 왜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들의 양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놓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성경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조차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모든 사람들의 양심 가운데 새겨 놓았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가 잘못하면 아 이것이 잘못이구나 이것이 나쁜 짓이구나 하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그래서 마음에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거에요. 벌벌 떨 수밖에 없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겁니다. 그런 양심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억압해버리면서, 그러면서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를 향해서 권고하기를, 그 지혜의 말씀, 어디서든지 늘 우리를 향해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노크하고 있는 그 지혜의 말씀이 있는데, 그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지혜의 말씀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라,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보다도 지혜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라. 정금보다 지식을 얻어라라고 하는 잠언 1장 10절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수사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히브리 평행법”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을 보시면 알겠지만 히브리 병행법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한 가지 사상을 전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보다는 훈계를, 금보다는 지식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금보다 훈계 지식을 취하라라고 하는 한 가지 내용을 전하는 겁니다. 은을 취하느니 차라리 훈계를 취하고, 금을 취하느니 차라리 지식을 취하라고 하는 두 가지 제한 방법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말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너희가 은금을 취하는 것보다 훈계 지식을 취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라고 말하는 이런 히브리 평행법적 표현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깨달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과장법적 대조”라고 하는 표현 방식입니다. 여기서 그림에서 보면 알겠지만, 은금을 취하지 말고, 그리고 훈계나 지식을 취하라고 하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그러니까 은금을 절대로 가지지 말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과장법적 대조라고 하는 표현법이 무엇이냐면, 정말 중요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비교하기 위해서, 그냥 “금은보다는 훈계와 지식을 취하라” 이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금을 취하느니 차라리 지식을! 은을 취하느니 차라리 훈계를! 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러니까 금은이 절대 필요한 것이 아니고, 그냥 그것은 갖다 버려라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은금을 버려야만 하는 결단도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정작 이 말은, 우리가, 그러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은 다 버려야만 한다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닌 것이죠.

그러면 우리가 은금보다도 지혜를 얻어라, 명철를 얻어라, 훈계를 얻어라, 지식을 얻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잠언서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데, 도대체 지혜라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지혜가 무엇이죠?

지금까지 우리가 잠언서를 1장에서부터 7장까지 살펴봤습니다마는, 우리가 쭉 살펴보면서, 지혜가 무엇이라고 이야기했죠? 기억이 하나도 안 나십니까? 지혜가 뭐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이죠? 무서워하는 게 그게 지혜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8장 13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그러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대해서, 또 다른 정의를 해주고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악을 미워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사실 이 악을 미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경외 하고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달리 표현하면,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잠언서를 보면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지혜는 무슨 기발한 아이디어, 기발한 꾀, 정말 신박한 그런 생각, 이런 것이 지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혜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에는, 그리고 우리가 잠언서를 공부할 때는, 우리가 잠언서를 공부하면서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으로 잠언서를 공부하겠다고 하는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잠언서를 한다니까 아마 흥분하셨을 거예요. 잠언서를 다룬다고 좋다 하면서 기뻐했을 텐데, 그때 우리가 잠언서 지혜를 다룬다고 했을 때, 우리의 마음 가운데 어떤 기대감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드냐면, 우리가 잠언을 잘 배우면, 우리가 이 세상에 어려운 난제들이 있을 때, 그것을 아주 지혜롭게, 아주 슬기롭게, 아주 기발하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정말 대단한 그런 지혜가 있지 않을까라고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아마 잠언 강의 한다고 하니까, 그런 기대들을 많이 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마치 솔로몬의 지혜 같은 것을 얻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무엇이죠? 어떤 두 여인이 와서 솔로몬에게 재판을 요청하는 겁니다. 두 아기가 있었는데 한 아기는 죽었고 한 아기가 살았는데, 그 아기가 서로 이 두 여인이 자기 아기라고 우기는 겁니다. 당시에는 dna 검사도 할 수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고,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아기는 다 똑같으니까, 생김새로 판단하기도 어려운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진짜 엄마를 찾아줄 수 있을까? 그때 솔로몬은 아주 놀라운 지혜를 가지고서 문제를 해결하죠. 그 아기를 둘로 짜개서 반반씩 주라고 했을 때, 진짜 엄마는 포기해 버리는 겁니다. 내가 안 가져도 되니까 주라고, 진짜 엄마의 사랑을 보는 그 솔로몬이 그 여인의 진짜 엄마라고 판결해 주어서, 그래서 그 솔로몬이 정말 뛰어난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칭송을 듣게 되었는데, 우리가 잠언서를 공부할 때, 우리가 잠언서를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여러분들이 가지는 그 기대감이 무엇이냐면, 나도 잠언서를 좀 잘 공부해가지고 나도 정말 어려운 문제들 정말 복잡하게 꼬여 있는 문제들이 있을 때, 그것을 솔로몬처럼 명쾌하게 아주 신박하게 정말 모든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로 정말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지혜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경 말씀을 잘 배우면, 그런 놀라운 신비한 능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는 그런 기대감으로 아마 이 잠언서의 강의를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잠언서에서 말하고 있는 지혜를 지금 계속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데, 지금까지 그런 아주 신박한 지혜가 나왔습니까? 안 나왔습니까? 별로 신박한 지혜가 안 나와요. 1장에서부터 지금 7장까지 살폈고, 지금 8장까지 오고 있는데, “아, 정말 기발한 생각이구나! 정말 높은 지혜구나!”라고 말할 만한 내용이 이 잠언서 지금 우리가 8장까지 오는 과정 가운데 단 한 절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뭐냐?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게 지혜라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8장 13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악을 미워하는 게 지혜라는 거예요. 지혜가 정말 소수의 아주 뛰어난 몇몇 사람들이 겨우 얻을 수 있는 그게 지혜가 아니라, 모두가 다 가질 수 있는 지혜, 무슨 지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게 지혜고, 악을 미워하는 게, 그런데 그게 진짜 지혜예요. 지혜가 무엇인가? 정직하게 행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겸손하게 행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지혜는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것을 어떻게 하면 탈취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들키지 않고 잘 속여서 내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지혜라고 생각을 해요. 마치 오징어 게임 속에서 상대방의 구슬을 빼앗기 위해서, 그 상대방을 위하는 척, 그를 아끼는 척 하면서 그 구슬을 담은 가방 속 구슬 주머니 속에 자갈을 집어넣어서 주고, 그것을 네다바이, 바꿔치기 해서 그 사람 상대방의 구슬을 빼앗아 버리고, 그래서 내가 승리했다고 말하는 게, “아 내가 그 내가 구슬을 다 뺏길 수 있는 그 순간에 이런 지혜를 써서 내가 이겼다!”가 지혜인 줄 알아요. 줄다리기를 하는데 내가 지금 힘이 약하지만, 우리가 꾀를 써서, 지는 척 풀어줬다가 다시 당겨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그래서 내가 승리하는 게 지혜일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지만 오늘 잠언에서 말하고 있는 지혜는 뭐냐면, 꾀가 지혜가 아니고, 어떤 우리가 상대방을 제압하고 눌러서 그래서 우리가 성공하는 게 지혜가 아니라, 손해가 나더라도 정직하게 행하는 게 지혜다!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 지혜이고, 겸손한 것이 지혜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 지혜이고, 하나님이 두려운 줄 알고 그래서 속이지 않고 악을 미워하는 그것이, 그것이 지혜인 것이고, 지혜롭지 못한 것 어리석은 것이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로 음녀에게로 빠지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로 욕심을 부리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로 포악하게 행동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다 어리석은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다라고 하는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를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까? 우리가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잠언서 8장 17절 말씀에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선한 길로 가는 것을 우리가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주님 선한 길로 가고 싶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으로 그 간절함을 가지고 나아갈 때, 지혜가 있는 거예요. 정직한 길로 가고 싶습니다. 순종의 길로 가고 싶습니다. 겸손한 길로 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길로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결단하며 그 사모하며 나아갈 때, 그 삶이 지혜로운 삶이 되는 것이죠.

만일 우리가 지혜를 추구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가? 18절 말씀부터 21절 말씀 가운데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 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지혜롭게 행하면 결과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 부귀가 따르고, 영화가 따르고, 복된 삶이 될 거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왜 이렇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 안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부귀영화를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고난을 당하게 될 가능성들도 많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 보면 손해 보는 일들도 생길 수가 있는 그런 상황들을 우리가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겁니다. 우리 지금 당장은 당장은 그렇게 손해 보는 것처럼 나타날 수도 있어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완전히 손해 보고 망하는 길처럼 생각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망하느냐?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악을 행하는 자가 성공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그게 정말 성공하는 것이냐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 당장에는, 지금 이 세상에서는, 악한 자가 성공하는 것 같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망하는 것 같고, 악한 꾀를 부리는 자가, 그리고 내가 마음대로 하고 싶은 자가, 그런 사람들이 정말 잘 나가는 것 같지만, 그래서 우리가 늘 미혹을 당하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로 가는 것은 어리석은 길이고, 이것은 힘들고 고난의 길이기 때문에 좁은 길이어서 찾는 이가 적은, 그러나 넓은 문 넓은 길에는 성공하는 것 같고 잘 되는 것 같으니까, 지혜가 없는 그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게 되는 거예요. 괜찮아 보이고, 성공하는 것 같고, 모든 것들이 다 괜찮아 보여요.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게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지금 당장 성공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 어리석은 자더러, 만일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내 목숨을 부르시면 네가 준비한 그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고,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수고했다.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칭찬하실 것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지금 당장 또는 때때로 마치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가는 그 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그 길이 쉴 만한 물가로 그리고 우리들에게 양식을 주시는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되고, 마지막 날에 우리 주님께서 원수의 목적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는 그 엄청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게 지혜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늘 넘어집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살기보다는 지혜를 추구하며 살기보다는, 지혜가 아닌 것을 따라가다가, 마치 미끼를 문 물고기처럼 패망의 길로 걸어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쉽게 넘어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수하고 잘못했던 바로 그 죄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지시고 십자가를 져주셨기에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것이고, 또한 앞으로 우리의 믿음의 길을 가는 동안에 주님 함께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가신 그 길 십자가의 그 길을 따라서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담대하게 믿음의 고백을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