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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와 시기로 자신을 죽인 사울 왕

– 이국진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많이 황폐하게 만든다. 질투와 시기로 인하여, 자신의 삶이 피폐해져버린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우리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사울 왕은 골리앗을 물리친 민족의 영웅 다윗을 진정으로 따뜻하게 맞이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하는 행렬을 맞이하는 여인들의 노래 때문이었다. 여인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과 비교하지 않고, 그냥 다윗만 칭찬하면 될 것을 이스라엘 여인들은 사울과 비교해가며, 다윗을 칭찬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비교를 통해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사울 왕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가장 높임을 받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울의 인기를 뛰어넘는 다윗이 출현한 것이다.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불레셋 민족을 물리친 기쁨으로, 모든 국민이 흥분하고 있을 때, 기뻐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왕 사울이었다. 조국이 위기에서 벗어난 것을 그 누구보다도 더 기뻐하고 좋아해야 할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는 노래 소리가 사울의 마음을 긁어놓았다. 사무엘상 18:8-9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하지만 시기로 인하여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사울 자신이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는 무엇보다도 우리를 더 많이 갉아 먹는다는 솔제니친의 말은 사실이다. 사울 왕의 모습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시기와 질투는 자신을 갉아먹는 독약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언 14:30)의 말씀처럼, 시기와 질투는 그 상대방에게도 큰 피해를 주지만, 질투하는 당사자에게도 치명적인 독약이 된다. 시기와 질투가 없었다면, 어쩌면 사울은 그런대로 좋은 왕으로 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때 그는 국가를 위기에서 구했던 명장이었고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사무엘상 11:1-11). 하지만 사울은 시기와 질투의 늪에 빠져 계속 수렁으로 들어갔다. 사울은 백성을 잘 다스리는 일보다는, 다윗을 죽이는 일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았다.

한번은 불레셋이 그일라 지방을 침략했지만, 사울 왕은 이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일라 지방을 침입한 불레셋을 물리치는 일에 나선 것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다윗이었다. 이미 다윗은 도망자 신분에서 왕의 일을 했고, 사울은 왕의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왕의 일을 하지 못했다. 외세의 침략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던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 일에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울은 국가를 제대로 통치하는 생산적이고 효과적인 통치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달려가는 삐뚤어진 삶으로 일관하였다. 이것이 시기와 질투의 결과였다.

시기와 질투에 휩싸여, 사람을 깎아 내리는 일, 죽이는 일에 몰두하는 인간의 모습처럼 추한 것은 없다. 우리는 시기와 질투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에 매어달리는 것보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기와 질투에 싸여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결국 자신이 죽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시기와 질투에 휩싸여 사람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서는 것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는 말씀처럼, 연약한 사람들을 싸매어 주고, 부족한 사람들을 채워주고, 나약한 생명들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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