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잠언서 18장 3절 한 절 말씀을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악한 자가 올 때에는 경멸 멸시가 함께 따라오게 되어 있다. 부끄러운 수치가 따라오게 되어 있고, 또한 능욕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하는 말씀, 우리가 이 말씀을 함께 묵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 선한 사람에게는 영광이 있을 것이지요. 하지만 정반대로 악한 사람에게는 수치와 멸시가 따라오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악한 자가 되어서 악을 행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선을 행하면서 선하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까요? 두 말하면 잔소리죠.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악한 자가 된다고 한다면 수치가 따를 것입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게 되면 멸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능욕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게 되면 행복해요. 우리가 선한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면, 우리들의 마음이 기쁘고 행복할 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그런 면을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들을 우리가 행한다고 한다면, 정말 수치스러움을 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 이것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나도 당연한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선한 자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종종 우리는 악한 일을 행하는, 악인이 될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선한 일을 하지 않고,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악인이 되어서, 수치를 당하고, 그리고 능욕을 당하는 그런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종종 악인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가 다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래로, 모든 사람들이 다 죄 가운데서 태어나게 된 것이고, 죄성이라고 하는 악의 본성을 우리 모두가 다 가지고 있어서, 평상시에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떠한 상황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의 악한 본성들이 자꾸만 튀어나오게 되어 있는 거죠. 악한 모습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서 튀어 올라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소설 가운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고 하는 그런 소설이 있습니다. 그런 소설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들어보기는 했지 않습니까? 예. 똑같은 사람이에요. 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낮에는 지킬 박사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정말 참 멋있는 사람인데, 그런데 그 똑같은 사람이 밤이 되면 완전히 바뀌어서, 하이드씨로 변해 버리게 된다고 하는, 그런 아주 특이한 상황을 어 설정한 소설이 바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고 하는 그런 소설인데요. 그런데 그런 특별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모두가 다 누구와 같아요? 그런 사람과 같아요.
이런 소설이나 영화나, 그 모든 것들은, 어 사실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들어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정말 순해 보이고, 착해 보이고, 정말 거룩해 보이는 그런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데 우리도 우리들 우리들 안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하이드씨의 요소들이 들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의 우리들이 그런 상황 속에 들어가게 되면, 어떠한 그런 상황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의 본성들이 튀어나오는 일들이 가만히 있는 거에요.
어디서 주로 튀어나옵니까? 내가 뭔가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내가 한참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에 누군가 끼어들고, 내가 식당에 가서 무엇인가를 요구했는데, 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센터에 가서 혹은 구청에 가서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데, 일 처리가 제대로 잘 되지 않고, 무엇인가 우리들 앞에 어떤 상황들이 닥치게 되면, 그렇게 좋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정말 악한 본성들이 막 튀어나오게 되어 있는, 왜 우리는 악한 자가 되는가? 그것은 우리 자신의 본성 속에 그런 악한 본성이 숨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들에게서 그런 악인의 모습들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악하게 행동할 때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내가 온유한 모습을 보이고, 내가 정말 너그러운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내게 주목하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참 너그럽게 사람들을 온유하게 대하면 깔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습니다. 좋은 말로 하면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몽니를 부리고 어거지를 써야, 그때서야 사람들이 비로소 관심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이죠. 목소리가 커야 이기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종종 이러한 악한 모습들이 자꾸만 나오게 된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잠언서 전체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그 핵심적인 요소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선을 행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악을 행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이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그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공의롭게 다스리고 계시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을 심판하셔서, 수치를 당하게 만드시고, 선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보상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가 조심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잠언서의 말씀 가운데서는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겁니다. 악한 자는 무엇과 함께 올 것이다. 멸시를 받게 될 것이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능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악한 자가 결국에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 사실을, 오늘 잠언서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이 잠언서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기억하면서, 내가 악을 행한다고 한다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악을 행하게 된다고 한다면, “능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이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며,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쁘신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날마다 날마다 묵상하며, 하나님을 닮은 선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계시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망각해 버립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잠언서의 말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악을 행하는 자는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악을 행하는 자는 멸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악을 행하는 사람이 수치와 능욕을 당하고 멸시를 당하는 세상입니까? 아니면 오히려 더 떵떵거리면서 사는 세상입니까? 우리가 늘 경험하고 있잖아요? 악인들이 오히려 큰소리 치고, 악인들이 오히려 공의를 외치고, 법을 외치고 정의를 외치는, 그런 아이러니한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영광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게 되면서 그래서 우리들의 종종 헷갈리는 거예요.
그런데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해야 될 텐데, 오히려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고,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오히려 선을 행하려고 했다가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아요. 악을 행하고 있는데, 그 악을 행하는 것을 정말 마음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다 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런 악을 행하는 사람을 막으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말리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의를 위해서 살려고 하면 조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자꾸만 그런 의로운 대열에 서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전하게 정말 의를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그 앞을 가로막는 정말 이상한 현상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오히려 이 세상에서 악이 더 활개 치는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잠언서의 말씀처럼, 만일 내가 악을 행한다고 한다면 결국에는 멸시를 당할 것이다. 내가 만일 악을 행한다면, 결국에는 수치를 당할 것이다. 악을 행한다면, 결국에는 능욕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이 잠언서의 말씀을 우리가 분명하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러한 일들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인이 떵떵거리면서 사는 모습을 볼 때에,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늘 혼란스러운 마음들이 생기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우리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교훈해 주셨습니다. 무슨 교훈을 예수님께서 해 주셨나요? 마지막 날에 대한 메시지를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많이 말씀해 주셨는지 몰라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어떻게 와요? 도둑과 같이 올 것이다. 세상 끝날이 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에는 그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만일 그 날이 온다고 한다면, 지금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신실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닦아주시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 것이다”라고 하는 종말에 관한 메시지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 가운데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날이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악을 행한 사람들은 어두운 곳에 쫓겨나, 이를 갈며 슬퍼하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많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크리스천들은 늘 기억해야 될 것은, 지금 당장 악인이 수치를 당하지 않고 떵떵거리는 것처럼 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실망할 게 아니라,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자꾸만 당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국 모든 것들을 바로잡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실 것이다. 잠언서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의를 이루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대하면서, 소망을 가지고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해주신 비유 가운데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가 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보면, 어느 날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밭에서 자라는 것이 알곡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가 보이는 거예요. 가라지가 보일 때 종들이 주인에게 묻습니다. 주인님, 우리가 심기는 좋은 씨만 뿌렸는데, “어떻게 저렇게 가라지가 있는 것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럴 때 그 주인이 대답하기를 “원수가 가라지 씨를 뿌렸구나”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때 종들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주인님 그럼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들어가서, 저 가라지를 뽑아버릴까요? 저 가라지를 그냥 내버려 두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서 뽑아버렸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할 때 놀랍게도 주인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가만 내버려 둬라.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마저 다칠지 모르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그 밭을 그냥 참고 견디면서 지켜봐야만 하는 그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알곡을 모아서 곡간 안에 들이지만, 그러나 가라지는 모아서 불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인의 경우에는 이 사람 주인의 경우에는 알곡을 다치지 못하게 하면서, 가라지를 뽑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가라지를 남겨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악인을 지금 당장 심판하셔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가라지들만 뽑아낼 그런 실력이 없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시면서, 그런 사람들마저도 회개하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고, 그러나 결국에는 이 악한 자들을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거라고 하는 주님의 메시지를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입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악을 행하는 일을 그냥 자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라고 하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악을 행하면서, 목사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장로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권사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 안에서도 악을 행하며 악을 저지르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럴 때 우리가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악한 일을 할 게 아니라, 우리도 정말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믿음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아가야 할 텐데요. 그런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뻔뻔하게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수많은 동지들을 규합하기 때문에 그래요. 악을 행할 때 혼자 악을 행하면, 두려워서 잘 악을 행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악을 행할 때는 꼭 누구를 포섭하죠? 같이 악을 행할 사람들을 포섭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변에 악한 자들을 같이 규합하고, 나뿐만이 아니라 저 사람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똑같이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함께 무리를 이루어서, 그래서 우리가 함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당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들이 잘못하는 것을 자꾸만 감추어요.
내가 악을 행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아니하면서도,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악이라고 하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같이 세력을 규합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말을 맞추고, 동지들을 규합하면서, 그래서 나는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똑같이 악을 행하는 같이 동조한다고 해서, 안심할게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악은 아무리 많은 동지가 있어도 악이고, 선은 아무런 동지가 없다고 할지라도 선은 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때 하와는 혼자 그 선악과를 먹은 다음에 자기 남편에게도 줬어요. 왜 줬을까요? 사랑하는 남편이니까 줬을까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아마 혼자 먹으니까 뭔가 찜찜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 남편에게도 주고 남편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나만 먹은 거 아니야. 남편도 먹은 거야. 같이 약을 저지르면서 안심하는 거죠. 도둑질하러 갈 때도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친구들과 함께 도둑질하러 가면, 더 담대해지는 것처럼, 악의 동지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담대하게 악을 행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지가 있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보시고, 그리고 악인은 결국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그 사실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맨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렇게 악인이 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다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그 누구에게도 악에 대한 면역이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감기가 걸린다고 한다면 요즘 독감이 많이 유행한다고 하나요? 감기가 많이 유행한다고 하나요? 그런데 어 그런 감기나 독감에 절대로 안 걸릴 자신 있는 사람 있습니까? 있으세요? 없어요. 제가 좀 약간 교만하긴 한데 안 걸릴까? 근데 저도 걸리려고 한다면 걸릴 수 있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악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모두에게 다 있어요. 몇몇 사람 아직 신앙이 미천한 아주 작은 초신자들만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만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악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악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들이 우리 모두에게 다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들에게 어떠한 특별한 상황이 생기고, 어떠한 형편이 어떠한 조건들이 맞아떨어지게 된다고 한다면, 이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잠재되어 있던 악의 본성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끝까지 밀어붙이고, 그 악을 계속해서 유지시켜 나갈 게 아니라, 오늘 잠언서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계속 악한 일을 한다고 하면 결국에 그 마지막은 어떻게 될 것인가?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악을 행하는 일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에는 멸시를 능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우리의 본성을 통해서, 갑자기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잘못된 생각이나 악한 행동들이 불쑥 튀어나왔다고 한다면,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회개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우리 모두가 엎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회개합니다.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저를 씻어주셔서, 제가 참 악한 생각 잘못된 행동들이 튀어나왔는데, 이것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않고 내 자신을 돌이킬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해요. 저도 마찬가지 저도 문득문득 악한 행동들이 나와요. 그러면 안 되는데 잘못된 행동들이 튀어나와요. 그것을 계속해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가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의 보혈의 피로 용서를 받고, 이제는 그런 악한 길로 가지 않기 위한 결단을 하고, 내가 악을 행하면서 계속 악한 길로 간다면, 결국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고,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 사실을 마음속에 기억하면서, 내 자신의 모습을 돌이키며 주님 앞에 돌아오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2025년 한 해 저희들이 살아가는 이 인생의 길 가운데서, 때로는 우리가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미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기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우리들의 입을 통해서 악한 말을 할 때도 있고, 여러 가지 잘못된 악한 행동들이 나올 때마다 그 결국은 수치와 멸시와 능욕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순간에 돌이키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거룩의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