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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 이국진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바로 분노하며 심판하지 않으시고 길이 참으셨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 후서 3:8-9)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성내지 않는 사랑을 보이시는 것임을 아는가?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대로 치셨다면, 우리는 지금 살아 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드시는 채찍은 솜방망이에 불과하다.

우리 두 딸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못살게 군다고 작은 아이가 나에게 달려왔다. 언니를 혼내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큰 딸을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혼냈다. “왜 동생을 못살게 구니?” 그러면서 큰 소리 나게 얼굴을 향해 내 손을 들어 때리는 척 했다. 하지만 내 손이 친 것은 나의 다른 손바닥이었다. 그러면 큰 딸은 나를 꼭 껴안고 헤헤 웃으면서, 아픈 척 연기를 했다. “아야. 아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심판하셔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 채찍을 들어 예수님을 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이고, 우리는 살았다. 하나님의 그런 성내지 않은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가 남편을 향해 분노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자녀를 향해 분노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성도들끼리 분노할 수 있을까? 나를 핍박한다고, 같이 대들 수 있을까? 손해 보는 일이 있다고, 사회 법정으로 문제를 가지고 갈 수 있을까?

생각해볼 문제 / 토론 문제

1. 분노는 한번 쏟아놓으면 활시위를 당긴 화살처럼 과녁을 향해 날아가 상처를 주게 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분노를 다스릴 수 있을까?

2. 불의를 보고 정의감에 불탈 때,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옳은가? 동기만 옳다면, 분노를 내는 것이 옳은가?

3. 유순한 대답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말을 할 수 있을까?

4.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분노로 표출하지 않으면서도, 화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분노의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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