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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Q:

“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너무나도 유명한 말씀인데요. 이 말씀이 사실은 욥의 친구 빌닷이 한 말이었네요.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욥 42:7)라는 판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욥의 친구가 한 말을 우리가 사용해도 괜찮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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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맞습니다. 이 구절은 빌닷이 한 말입니다. 그리고 욥의 친구들이 한 말은 옳지 못했다고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을 우리가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누가 말했는가는 생각보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누가 말해도 진리이고, 거짓은 누가 말해도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가” 말했는가에 크레딧을 많이 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은 그 말씀 자체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같은 말씀이라도 사용하는 자가 잘못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시편 91편의 말씀을 사용합니다. 시편91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사탄의 사용 용도는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기 위해서였고, 사실상 적절하지 못한 시점에 적절하지 못한 것을 부추기는 잘못된 방도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긴 하지만, 예수님은 그대로 따를 수 없었습니다. 사탄적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사탄이 인용해서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려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절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시편 91편의 말씀이며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오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것을 피하면서, 적절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빌닷은 이 구절을 사용하면서 욥에게 충고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액면 그대로는 선한 말일 수 있지만, 빌닷이 사용할 때에는 선하지 못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욥기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이 말씀은 욥을 영적으로 넘어뜨리는 용도일 뿐이고, 빌닷의 영적인 교만이 있는 말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이 선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소망을 주는 구절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순종의 길로 나아가는 자에게 소망을 주는 메시지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요즘 이단들이 활개를 칩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가장 좋은 말들을 사용하곤 합니다. “다락방”이니, “신천지”이니, “기쁜 소식”이니 하는 표현들은 성경에 나오는 아주 중요한 표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을 이단에서 사용해버리니, 우리 크리스천들이 사용하기가 껄끄러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단어들을 이단들이 사용했다고 해서 그 단어 자체가 이단적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의 바른 사용이라는 숙제를 줍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액면 그대로 전달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씀이어야 하는데, 전혀 경우에 맞지 않는 말씀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주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묵상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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