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성경연구소

질문하고 싶어요전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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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02 오전 10:20
    하나님은 왜 그리 잔인한 하나님인가요? 왜 하나님은 아무런 죄가 없는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라고 하셨나요? 심지어 어린아이들마저도 죽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은 너무 잔인한 하나님처럼 보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요? 1
  • 관리자 2018.04.02 오전 10:20
    그렇게 보이네요. 성경을 보면 특히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한 것 같은 명령을 내리실 때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진멸해버리라는 명령을 하시는 그런 하나님은 너무 잔인해 보입니다. 하나님이 잔인하다고 느끼는 것은 질문하신 분만이 아닙니다.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고, 그래서 심지어 구약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들까지 죽이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너무 끔찍해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는 죄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가 짓는 죄들은 그렇게 끔찍한 죄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철저하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첫째,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악하고 행동하는 것이 악할 뿐입니다. 이것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모두가 사악한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둘째, 우리가 지은 모든 죄는 가벼운 죄들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마땅한 대가는 죽음밖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진멸하라고 하신 것은 아무 죄가 없는 사람들을 억울하게 진멸하라고 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특히 가나안 민족의 죄는 너무나도 커서 그 땅이 그 주민들을 토해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레 18:25). 하나님은 단순히 이방인이기 때문에 진멸하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방인들 중에서도 라합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구약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악인들이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셨습니다(겔 18:31-32; 33:11). 그리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아무리 큰 죄라 할지라도 용서해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우리들이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그게 큰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추행과 성폭력을 행사해서 피해자는 눈물과 고통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가해자는 그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뻔뻔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그 말 때문에 그 말에 피해를 당한 사람은 깊은 고통을 느끼며 심지어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인데, 가해자는 전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정말 엄청난 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죄를 지은 자들을 향해서 오래 참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던 바로 그 가나안 족속을 400년간 참기까지 하셨습니다(창 15:13-16). 회개하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그 기회를 의도적으로 거부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 잔인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통신호를 위반해서 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경찰이 벌금을 발부하는 것은 운전자에게 너무 과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참고 또 참고 참으시면서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결국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악하게 행동한다면 그 책임은 처벌하는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일을 행한 우리들에게 있을 뿐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처형하신다 해도 아무 항변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근사한 모습으로 우리를 치장하고 있어서 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깊은 내면까지 벗겨버리면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마치 깨끗해 보이는 방에 한 줄기 빛이 비치면 그 안에 먼지가 가득 차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셨고, 더 나아가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 2018.04.01 오전 08:11
    목사님, 성경말씀을 읽다가 궁금한게 있어서요. 로마서 10장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서 바울은 왜 시인하는것을 먼저 기록했나요? 마음으로 믿는것이 우선되어야 입으로 시인할수 있는 게 아닌가요?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이렇게 기록한 것인가요? 1
  • 관리자 2018.04.01 오전 08:11
    말씀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읽는군요.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입으로 시인하는 것"과 "마음에 믿는 것"은 순서를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히브리 평행법(parallelismus membrorum)은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법이었는데요. 이런 표현방법의 자세한 의미를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같은 의미를 반복해서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먼저 하게 되면 결국 마음으로 믿게 될 것이라는 사상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것이 곧 입으로 시인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것은 단순히 믿음이 없이 시인하기만 해도 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으로 시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2018.03.31 오후 22:11
    예수님 이후 신약 시대에는 인간사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은 없다고 이해 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적힌 초대교회 때, 땅을 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공동체에 거짓을 표 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합니다. 맥락상 죽음을 죗값으로 받은 것으로 묘사 되어져 있는데 옳은 해석인지 궁금합니다. 인간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다녀가신 이후에도 직접 그 자리에서 주관 하셨다는 부분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보는 이해와 쉽게 부합되지 않는 듯 해서요. 1
  • 관리자 2018.03.31 오후 22:11
    예수님 이후로 더 이상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세상 일에 간섭하지 않으신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흔히 이신론(理神論, Deism)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주장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며, 지금도 이 세상의 역사를 직접 통치하고 계시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에 응답하시며 초자연적인 기적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신구약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하나님의 추가적인 계시가 없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계시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성경 외에 다른 어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주어졌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며 그 뜻을 들려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이며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권위 있는 말씀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개인적인 경험들은 성경 말씀의 빛 아래서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며, 성경을 넘어서는 권위를 가지거나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사건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도님께서는 예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후에는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사역을 하지 않고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 일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 2018.03.31 오후 15:47
    하나님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너무 많이 세뇌당해서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나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세뇌를 당해서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살아온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없어요. 내가 너무 세뇌당해서 속아온 것은 아닐까요? 1
  • 관리자 2018.03.31 오후 15:47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겠네요. 그 동안 부모님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많이 이야기해왔고 또 교회에서도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가르쳐왔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그 동안 계속 세뇌 당했던 것이라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맞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세뇌는 정반대의 방향에서도 이루어진답니다. 부모님들과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세뇌하고 있지만, 정 반대로 인터넷이나 내가 읽은 책이나 친구들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다른 쪽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역시 세뇌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세뇌는 한쪽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양방향에서 함께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세뇌를 당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실제로 사랑해준다면, 그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세뇌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거부할 수 있을까요? 세뇌가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세뇌할 때에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과연 하나님이 계실까요? 계시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정말로? 아마 하나님이 계시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것처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내가 세뇌를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만으로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이 모두 잘못된 믿음이었다고 결론을 너무 빨리 내리지 않으면 좋을 것 같아요.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이 말한 대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거라는 것에 내 인생을 걸었든데 실제로 죽어보니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주 큰 낭패일 것이니까요.   어느 쪽에서 주는 세뇌가 맞는 세뇌인지 고민해 보세요.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고 세뇌하고 있는 그 세뇌가 맞는 것인지,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며 사실 나는 주워온 아이일 뿐이라고 놀리는 친구들의 세뇌가 맞는 이야기인지 고민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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