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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아시는 하나님

WebServant 2016.06.03 13:56 조회 수 : 142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하나뿐인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막으셨다그리고 아브라함을 칭찬하셨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까지 아니하였으니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는데 아브라함을 그 시험에 잘 통과하였다아브라함의 시험 답안지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합격했다고 평가해주신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하나님께서 이제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게 되었다니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었던가어떻게 마치 전에는 잘 몰랐었는데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하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아브라함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말인가왜 하나님은 마치 그 지식이 제한적이었던 것처럼이런 표현을 하는 것일까?

 

놀랍게도 성경에는 이런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창세기 1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하여 과연 그러한지 하나님께서 내려가서 그 모든 내용을 확인해보고 알기 원한다고 표현하고 있다(창 18:21).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을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에게 하셨던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다(출 2:23-25).

 

반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을 때,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굳이 베드로가 대답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omniscient) 하나님이시다만일 무엇인가를 잘 모르시는 분이라면 그분은 하나님일 수 없다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는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하나도 감춤이 없이 드러나 있다(히 4:13).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것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라고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한다(마 10:30).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알고 계시며멀리서도 우리의 생각을 알고 계신다고 표현하고 있다(시 139:4).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이 유익한지 잘 알고 계신다(마 6:8).

 

그런데 성경은 동시에 하나님의 지식이 제한적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는 표현이 있고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잊으실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표현도 존재한다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 것을 이제야 할게 되었다는 표현도 있고네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도 있다(사 43:25). 이러한 표현은 실제로 하나님의 지식이 유한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들이 이해하기 좋도록 표현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을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표현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일에 대하여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이러한 표현은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그러지지 않고마치 전혀 죄를 기억하지 않는 분처럼 우리를 사랑으로 품어주실 것이라는 표현이다이것이 사실 우리들에게는 불가능하다한번 섭섭한 관계가 되거나 불편한 관계가 되면 아무리 그 관계를 회복하려고 해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관계를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다하지만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전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대하시는 것이며그런 상태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죄를 전혀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조상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잊고 계시다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그 때서야 하나님께서 맺으셨던 언약이 다시 생각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고통 가운데 울부짖을 때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그 구원의 역사를 실행에 옮기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 인간들이 볼 때에는 마치 하나님께서 그때에서야 언약을 기억하시고 행동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경외함을 이제야 하나님께서 아셨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모르고 있다가 시험을 통과한 이후에야 답안지를 보고 그 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마치 무엇인가 좋은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 상장과 트로피를 주어 그 성적을 치하하는 것처럼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칭찬하시는 표현인 것이다좋은 업적에 대해서 상장과 부상을 주어 그 업적을 인정하는 것처럼하나님의 선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칭찬하고 인정하는 표현일 뿐이지그때에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아셨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악인은 두려워해야 한다자신의 악행이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것이 아니다하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위로를 얻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자신의 의로움이 이 세상에서는 인정받지 못할 수 있어도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고 신원하여 주실(vindicate)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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