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성경연구소

구더기 무서우면 장 못 담근다

WebServant 2016.06.03 14:25 조회 수 : 146

구더기 무서우면 장 못 담근다 


우리나라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이 있다.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 장 담그는 걸 본 적 있다. 항상 장을 담가 두면 구더기가 꾸물거리며 나왔다. 파리가 그 안에 알을 낳았기 때문에 구더기가 들끓었던 것이다. 요즘 세대에는 하얀 구더기가 올라오는 모습을 본다면 아마 기겁을 하고 말겠지만, 옛날에는 그런 장면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을 담갔다. 그리고 그 장으로 밥을 맛있게 먹었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잠 14:4)

소를 키우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소가 있는 한 외양간은 깨끗할 수가 없다. 하지만 외양간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소를 없앤다면, 소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유익을 잃게 될 것이다. 다행히 사람들은 아주 현명해서, 외양간이 깨끗한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소가 있음으로 얻는 많은 이익을 선택한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 담그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앙생활에서는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는 일을 포기하고, 외양간이 좀 더러워진다는 이유로 소를 없애 버리는 일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난다. 없애는 행동을 잘한 일이라 박수를 친다.


임직식 때 임직 헌금을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물론 나는 임직자들에게 과도하게 헌금을 거두고 헌금으로 성도를 시험에 들게 하고 더 나아가 헌금을 위해  임직자를 세우는 일은 철저하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사실 헌금은 자발적으로 내는 게 원칙이다. 의무금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임직 헌금에 대해 여러 가지 잘못된 관행이 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정말 바람직한 일일까? 문제의 핵심은 자원하는 마음 없이 강압적으로 혹은 어쩔 수 없이 내야만 하는 상황일 것이다. 이럴 경우 바람직한 해결책은 다 없애버리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원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게 해결책이다.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지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게 바람직하지, 문제점이 있다고 다 없애고 행동하지 않는 게 옳은 것이 아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주에 교회당 대청소를 했다. 다들 바쁘고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청소에 함께했다. 금년에는 예년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특히 젊은 성도들이 많이 나온 게 감사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참여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전도회별로 참여하라고 서로 강하게 권고한 덕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중에는 강요에 못 이겨 나온 성도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만약 교회당 청소에 참여하는데, 강요나 체면에 못 이겨 나왔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전도별로 할당이 되었을까? 교회의 사역 원칙 중 하나는 자발적으로 하는 거다. 억지로 끌려 나오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오라고 강요하는 일을 없애면 해결될까? 바람직한 해결책은 그게 아니다. 해결책은 자원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거다. 참여 권고를 하지 않는 걸로 교회 원칙을 세운다면, 그건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지 못하는 셈이다.


수양회나 성경 학교 등 여러 행사를 할 때 우리 교회의 미래 세대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후원금을 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마음이 동해서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혹시 강요나 체면 때문에 억지로 후원금을 낸다면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후원금을 요청하지 못하게 하거나 갹출을 전혀 하지 못하게 하는 건 바른 해결책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외양간이 더러워질까 소를 없애 버리는 상황과 같다. 가장 좋은 방식은 자원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날 교회당을 청소하러 나오신 분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모습이 보였다. 다들 바쁠 것이고 청소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참 감동이 되었다. 아마 그날 온 성도 중에는 체면이나 강요 때문에 억지로 나온 이가 혹시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회당을 청소하면서 기쁨이 마음속에 생겼을 거라고 생각한다. 헌신과 봉사는 하면 할수록 기쁨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좋다' 하면서, 청소하러 나오라고 권유도 하지 않고 그냥 방치해 둔다면 그게 정말 좋은 일일까?


선한 일에는 자발적인 마음이 생기도록 기다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우리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선한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게 쉽지 않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때, 권유하기도 하고 강요하기도  하면서 산으로 데리고 가면, 결국 그 사람은 등산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억지로라도 산으로 데리고 온 것에 감사하게 되기도 한다. 성도들이 선한 일에 동참하라고 독려하는 건  그냥 자발적으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자발적 헌신이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사탄의 속임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권면해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 동참하도록 돕는 게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사탄의 그럴듯한 속임수가 정답처럼 들린다. 외양간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정답처럼 들리고, 구더기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멋있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깨끗한 외양간이 목표가 되면 소를 키울 수 없다.


금년 들어 우리 교회 로비에 있는 탁자에는 매주 꽃꽂이 화분이 놓여 있다. 금년도 미화부를 담당하는 분이 해 놓은 듯하다. 교회당 안에 들어오는 분마다 꽃을 보고는 얼굴이 밝아진다. 조그마한 꽃꽂이 화분이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만든다. 돈을 아끼고 절약하는 게 최우선의 목표가 되면 이런 기쁨은 도무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신앙생활도 똑같다. 편하고 쉬운 거나, 그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게 우리의 최우선 목표가 되면, 우리는 점점 더 퇴보해 갈 것이다.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이 어느 날 자발적으로 마음에 감동을 받아 헌신하는 자리에 나가도록 기다리는 게 옳을까? 아니면 선하고 좋은 일들이라면 권유도 하고 강권도 해서 참여하도록 돕고, 그래서 이후에 정말 좋고 아름다운, 보람 있는 일임을 깨닫게 하는 게 좋을까? 물론 자발적으로 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하지만 선한 일에 동참하도록 권유하는 것도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주변에서 불평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가 너무 얇다. 소가 있으면 얻는 유익이 많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우리는 그저 더러워지는 외양간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만 자주 휘둘린다. 적절하게 투자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에도 돈을 절약하는 게 최고의 우선 목표가 되어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게 꼭 필요한 것입니까?"

꼭 필요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우리는 밥만 먹어도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사는 데 꼭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좋은 옷을 입고 집을 아름답게 가꾸고 문화를 즐기는 일이 정말 불필요할까?


어머니는 꼭 필요한 것만을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하여 최선의 것을 한다. “이게 꼭 필요한가?”를 질문하기 전에, 무엇이든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어이 이루어 낸다. 그 힘으로 자녀들이 아름답게 성장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외양간이 더러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기까지 감수하는 사랑이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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