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성경연구소

나는 왜 글을 쓰는가?

WebServant 2016.06.03 14:22 조회 수 : 170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기회가 닿는 대로 글을 쓴다그리고 그 글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발표한다이렇게 글을 쓰고 발표하는 일을 하는 목사는 그리 많지 않다물론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사들은 자신들이 했던 설교를 묶어서 설교집으로 편찬하는 일을 하곤 하지만나처럼 끊임없이 글을 써대는 목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예전에 고든 콘웰 신학교 재학시절에 만난 어떤 목사는 음식을 잘하는 전문 쉐프였다그래서 그 목사는 항상 요리를 했고 그의 요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다어떤 목사는 연극을 하기도 하고어떤 목사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것처럼 나는 글을 쓴다하나님은 우리들을 각각 독특하게 창조하셨으며 단 한 사람도 똑같이 만들지 않으셨다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독특한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하였다(고전 12:21). 손은 손의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발은 발의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성경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다(고전 10:31). 따라서 글을 쓰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물론 내 속에서는 항상 교만의 마음이 도사리고 있고표면적인 목적 속에 가리어져 있지만 악한 동기가 작용할 때가 없는 것이 아니다모든 선한 일을 하는 중에 악한 동기가 살며시 스며들게 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래서 마르다가 주님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다가 오히려 시험에 빠지고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구제하고 기도하면서 교만해졌던 것이 아닌가?그래서 늘 나는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경건하게 서는 것을 위하여 내 자신을 살펴보곤 한다글을 쓰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친다.


나는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다가 은혜를 받거나 해석할때 새로운 깨달음이 있을때 글을 쓰면서 주의 은혜를 한번더 생각한다사람들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방법이 각각 다른데나는 글을 쓰면서 묵상을 하고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셈이다어떤 사람을 노래를 하면서 묵상을 하며 찬양으로 영광을 돌릴수도 있고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리면서 주의 놀라운 솜씨를 드러내듯이 말이다글쓰기는 내가 깊이 묵상하는 도구가 된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글을 쓴다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가진 목사이다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나는 설교를 한다예배의 자리에 나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가르침으로써 영적인 진리를 깨닫게 하고 그에 따라 자신들의 삶을 변화하도록 돕는 것이 설교의 목적일 것이다성도들을 영적으로 목양함에 있어서도 나는 사람들과 만나 상담하기도 하고 권면하고 위로하기도 한다하지만 나는 자타가 인정하듯이 화려한 언변을 가지고 있거나 단시간에 상대방을 만족시킬만한 상담을 해줄수 있는 번지르르한 달변가도 아니다전통적으로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를 통해상담을 통해 말을 많이 함으로써 그들의 신학과 목회관을 설명해왔다물론 나또한 수많은 설교와 상담을 하지만 내가 택한 또하나의 도구가 글쓰기인 것이다전통적 방법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고 나는 글을 쓰며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려한다하나님의 뜻을 보다 더 정확하게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글은 아주 유용하고 효과적인 도구이다예배당 안에서 설교를 한다면 그 예배당 안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그 설교를 영상이나 음성파일로 만들어 인터넷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제공하면예배당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그런데 글은 그 이상으로 널리 파급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나는 글이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끊임없이 해왔는데놀랍게도 짧은 글의 형식을 통해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을 발견했다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것을 통해서 글을 올리면 나와 친구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그 글을 읽을 수 있고더 나아가 그 친구의 친구에게도 전달되면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준다한번 글을 올리면 적어도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전파된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쓰는 칼럼 형식의 글은 기독교인들에게만 친숙한 설교라는 포맷과는 달리불신자들도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다내 글 속에는 언제나 복음의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어서글을 읽고 당장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이 복음을 향해 열릴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시의성이 있는 문제들에 대한 성경적 답변과 고민들을 말함으로써 성도들에게도 바른 생각과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SNS에서 내 글을 계속해서 공유되고 전파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쳐왔다그리고 내 글을 읽고 실망과 좌절을 겪던 사람들이 주님을 보면서 위로를 얻기도 하고사랑이 메말라가던 가정들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해주기도 했다나는 종종 내 글을 읽은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피드백을 듣곤 한다힘든 기간을 보내고 있었는데주님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얻게 되었다는 고백으로부터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얻게 되었다는 피드백까지 다양한 반응을 듣는다그런 반응을 대할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응답을 듣기도 한다이러한 모든 일들이 감사할 뿐이다.


나는 꾸준히 우리 교회의 주보에 글을 실어왔다최근 어떤 분이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우려하는 것을 보았다글을 쓰려면 시간이 많이 투자되어야 하는데이러고 있을 시간에 목사로서의 본연의 일을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게 그분의 생각이었다이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첫째로글을 쓰는 것이 내게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드는 것이 아니다글을 자주 쓰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말보다 글이 더 쉬운 표현의 도구이다나의 아내 또한 글쓰기를 즐겨하는데 아름다운 자연으로 소풍을 가거나감격스런 일을 겪었을 때면 그날 밤 침대 위에 종이와 펜을 들고 앉아 순식간에 시와 수필을 거미줄처럼 쏟아내곤 한다그 글을 읽으며 사람들은 말한다며칠 밤을 세며 머리를 쥐어짜도 나오지 못할 감동스런 글이라고 말이다둘째로내가 글을 쓰는 것은 목사로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복음을 아주 쉽게 풀어서 설득시키기 위한 내게 특화되어 있는 아주 잘 맞는 일이다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셨기 때문에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적어도 선지자라면 그들을 멀리하고 선지자 본연의 일을 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의 사명에 맞는 일을 하신 것이다잃었던 자들을 찾아가신 것이고 그들에게 천국의 잔치에 초대하신 것이었다나는 글이라는 방식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다가간다물론 전통적인 방식의 목회를 병행하면서 말이다.


나는 특히 젊은이들이 글을 읽고 긍정적인 반응을 해 오는 것에 고무되곤 한다기성세대들에게 통했던 목회방식이 젊은이들에게는 잘 먹혀들어가지 않는 반면에젊은 세대들은 글에 반응하고 그래서 대화를 나누게 되고 생각을 다듬어간다더 나아가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믿음의 길을 포기한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관심을 보이는 것에 고무된다확실히 글은 그들에게 다가가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아쉽게도 글의 영역에서는 불교의 스님들과 천주교의 신부들이나 수녀들에게 밀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상황이다이미 서점가를 장악해버린 이들의 책이 계속해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장악해버릴 것은 불 보듯 뻔한 것 같다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서 발표되는 그들의 글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다우리는 최고의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그 선한 일에 내가 조금이나마 사용되어지기 위해 나의 갈 길은 아직도 너무 멀기만 하다. 

 

바울 사도는 말로 직접 소통하는 데에는 뛰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다(고후 11:6). 그래서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이 쓴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는 반면직접 만나보면 몸도 유약하고 말하는 것도 시원하지 않다고 비난했다(고후 10:10). 그래서 고린도 교회 내에서는 유창한 달변가였던 아볼로(18:24)를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고전 1:12)하지만 아볼로는 한 때 유명했는지는 모르지만결국 바울이 쓴 글들은 지금까지 20세기에 걸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고 그들의 삶을 바꾸어왔다내 글은 바울의 글에 비할 것은 못되겠지만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그들의 삶에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은 바울의 마음과 같다


언젠가 선플(선하고 좋은 댓글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인터넷 상에서 악플(악성 댓글)이 활개를 치며 사람들을 절망 가운데로 몰아넣고 증오가 넘쳐나게 만드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선플운동이었다악플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심지어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면선플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갖게 하며 따뜻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다그렇다고 한다면 선한 몸글들은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요즘처럼 부정적인 뉴스와 주장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글쓰기를 할 필요가 있다부족하지만 거기에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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