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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민권과 형법 158조

WebServant 2016.06.03 14:17 조회 수 : 136

로마 시민권과 형법 158조 


예배를 방해하는 교인들로 골머리를 썩는 후배 목사가 질문을 해 왔다. 그들을 형법 158조에 근거해서 사법의 심판을 받게 해도 괜찮은지 말이다. 1995년 12월 29일에 개정된 대한민국 형법 158조는 이렇게 되어 있다.

"제158조 (장례식등의 방해) 장례식, 제사, 예배 또는 설교를 방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률 상식으로야 예배와 설교를 방해하는 죄를 짓는 사람이 있다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과연 이것이 유익한 것일까 하는 물음이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의 말씀처럼 하는 게 과연 유익할까 하는 고민이었다.


후배 목사는 자기 자신을 탓했다. 자신이 제대로 목회를 하지 못해 교인들이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배와 설교를 방해하는 교인들을 그냥 그대로 방치해 둘 수도 없다는 게 그의 고민이었다. 목사로서 모든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쩌면 목사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인격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 7:3)

질책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신앙 인격의 성숙을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바로 그러한 사실 때문에 교회 내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그냥 방치해 두면서 그들에 의해서 끌려다니지 않았다. 교회는 끊임없이 영적 전쟁이 벌어지는 곳임을 인식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 주도권을 잡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이상한 관점이 있다. 여성이 길을 가다가 성추행을 당하면 우린 성추행범보다 오히려 성추행의 피해를 당한 여성을 비난하고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강점하면 침략 전쟁을 일으킨 나라보다 아무런 힘도 없이 당한 그 나라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두 아이들이 싸우다가 한 아이가 울면 무엇 때문에 그들이 싸웠는지 그리고 누구의 잘못이 더 많은지를 따지기 전에, 우는 아이를 책망하기 일쑤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악이 사라지지 않는다. 성추행을 당한 학생은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못하는데 성추행을 한 당사자는 뻔뻔하게 계속 학교를 다니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악을 추방하기는 요원하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탓하고 스스로를 질책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이겠지만, 이 때문에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을 중단하거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게 된다면 그것은 사탄을 기쁘게 하는 일이 될 뿐이다.


바울 사도는 그냥 자책만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교회 안에 있는 거짓 교사들과 싸웠고 교회 내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쫓아내라고 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고전 5:11-13)

바울 사도는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냥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물론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과 육탄전을 벌이며 그들과 똑같은 수준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감정적으로 스스로 원수를 갚아야하겠다고 벼른 것은 아니지만(롬 12:19), 적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거침돌을 제거하였다. 바울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바르게 세워야 하겠다는 열정으로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종종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한민국 형법에 예배와 설교하는 일을 보호하는 법이 들어 있는 것은 그 옛날 바울 사도를 보호하여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과 비슷하게 예배와 설교를 보호해 주는 일반 은총적 장치이다. 이 법을 통해 우리는 교회를 파괴하려는 사람들의 폭력에서 교회를 보호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법규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길을 걷다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성추행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교회 내에서 이런저런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교회가 좋지 않은 교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천국이 아닌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고,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꼭 나쁜 목사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행실이 나쁜 여성만이 성추행을 당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역으로 만일 정말 사악한 목사가 있는데 형법 158조를 악용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적절한 절차가 있다. 노회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런데 만일 적절하고 성경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예배를 방해하고 설교를 방해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그것은 자충수에 불과하다. 만일 정말로 사악한 목사가 있다면, 그 집단(그건 교회가 아니다)에서 나와야 한다. 나오되 혼자만 나올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성경적인 교회로 옮겨야 한다.


성경적으로 건강하고 바른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길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마태복음 10장 16절 말씀처럼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은 순결함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순박하지만 지혜가 없다면 사탄적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 것이고, 지혜롭기는 하지만 순결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참된 성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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