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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불능

WebServant 2011.06.02 13:18 조회 수 : 1075

고쳐도 고쳐도 계속 고장나는 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미국에 처음 와서 샀던 차가 그런 차였다. 3년정도 된 중고차였는데, 그 차는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켰다. 마치 그 차는 내게 자동차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주려는 심산이었나 보다. 고장난 부품들을 고쳐가면서, 기계에 둔감한 내가 자동차 구조에 대해서 꽤 많이 배우게 되었다. 결국 그 차는 보스턴의 추운 겨울에, 교통사고로 폐차시키기까지 가난한 유학생의 돈을 꽤 많이 축냈다. 그때 다짐했던 것 하나는 다시는 D사의 차는 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미제 자동차는 다시는 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다 보니 그러한 다짐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다시 미제 중고차를 2년 전에 사게 되었다. 하얀색의 그 SUV는 그 이전에 소유했던 일제 차보다는 약간의 엔진소리가 크긴 했지만, 값도 싸고  아주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일제 중고차를 찾아다녔지만, 한정된 예산에서는 구할 수 없어서, 미제 차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적어도 차를 살 때에는 아주 그럴듯한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차는 이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10만 마일 이상된 일제 중고차를  구입하여, 그 이후로 4년동안 타면서 한번도 문제가 없었는데, 이 차는 산 지 불과 한달도 되지 않아서 이곳저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 많은 시간도 빼앗겼고, 돈도 많이 들어갔다. 하지만 고쳐도 고쳐도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며칠전에 엔진오일을 교환하기 위해 정비소를 방문했더니, 천불이 넘는 돈을 또 들여서 반드시 고쳐야만 하는 곳을 알려주었다. 결국 차를 교체하기로 결정적으로 결심하게 만든 셈이다. 딜러에게 가져갔더니, 터무니 없는 트레이드인 가격을 제시하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차는 가지고 있으면 더 가지고 있을 수록 더 손해를 보게 되는 구제불능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로 차를 구입하고 나오는데, 지난 2년동안 그 차 때문에 속이 썩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다시 생생하게 결심했다. 다시는 미제차를 사지 않겠다고. 예쁜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딸 아이들에게 인생을 가르칠 생각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 절대로 미제차를 사지 말라고.

미제 차보다도 더 구제 불능인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고 죄악을 행하는 우리들. 우리 인간보다도 더 절망적이고 이렇게 구제불능인 존재가 어디 또 있을까? 구약성경 가운데 사사기서는 우리들의 구제불능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지만, 살 만 하면 다시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을 저지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그 모습이야말로 구제불능이다. 구약성경 가운데 호세아서도 그런 구제불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남편의 사랑을 배반하고, 창기가 되어버린다. 호세아는 그 아내를 돈을 치르고 빼내오지만, 다시 또 그 소굴로 들어가 음탕한 자식을 낳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구제불능 중에서도 구제불능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구제불능이라 하여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고쳐도 고쳐도 자꾸만 고장나는 자동차보다 더 구제불능인 우리를 고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셔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어떻게 하다가 이토록 구제불능의 상태까지 오게 되었을까 난감하기 그지 없다. 신앙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버린 모습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모습들. 들리는 소식들마다 난맥상이다. 하지만 이런 구제불능의 상태에서도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몇몇 그나마 생각이 있는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옛날 엘리야 시대에 7,000명의 경건한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고, 또한 그러한 증거들을 주변에서 간혹 목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런 신실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제불능인 우리들을 구제불능의 자동차 처분하듯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심판하셔도 시원치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다.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사랑을 정의할 때,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정의한다. 어쩌면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하여 오래 참으셨음을 상기시켜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도 오래 참아야 한다. 구제불능이라 하여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구제불능인 우리에 대하여 참으셨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구제불능인 우리를 사랑하셨는가를 상기해야 한다. 더 이상 손 내밀 힘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구제불능인 우리를 위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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