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성경연구소

탁월함보다 신실함

WebServant 2011.03.29 08:20 조회 수 : 1124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는 탁월한 자라기보다는 신실한 자이다. 뒤쳐지면 죽는다는 생각과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이고, 교회의 강단에서조차도 탁월함이 강조되고 있지만, 하나님은 탁월한 자를 찾으시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자를 찾는다.


만일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가 “최대의 효과”라면, 하나님은 굳이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실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직도 여전히 똑같은 하나님이시라면,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는 이유는 “최대의 효과”가 아니다.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요나 선지자가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도망갈 때, 요나가 탄 배에 풍랑을 일으켜가며 또한 커다란 물고기를 준비시켜서, 요나를 회개시키는 것만이 하나님이 할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다. 다른 방법들이 충분히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말 잘듣는 이사야 선지자를 대신 보낼 수도 있었고,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그 일을 하게 하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굳이 요나 선지자를 회개시켜서 니느웨로 보내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목적은 니느웨 백성을 회개시키는 것에도 있었지만, 요나 선지자를 회개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만드는데에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있을 때, 엘리야 선지자를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셔서 그 기근을 피하게 하셨다. 빌 게이츠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남은 기름과 밀가루로 떡을 만들어 먹고 이젠 죽음을 기다리겠다고 생각했던 가난한 여인에게 보낸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목적은 그 기근동안 엘리야 선지자를 살리는 것에도 있었지만, 그 사르밧 과부의 가정을 살리려는 데에도 목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탁월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다. 사명을 가지고 일하는 자의 영적인 성숙은 하나님이 가지신 또다른 중요한 목적이다.


지금은 대학교를 다니는 우리 집 큰 아이는 고등학교 시절에 참으로 힘든 시기를 거쳤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면서도 일반 학교 공부를 그대로 다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제를 하느라 새벽 1시 2시를 넘기는 일이 예사였다. 하루는 새벽 3시가 가까이 된 시각에 울상이 되어서 내게 찾아와서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에세이 숙제가 남았는데, 수학문제를 다 풀지 못했다고. 그러면서 내가 수학문제를 풀어주면 그 사이에 에세이를 쓸 테니 도와달라고. 나는 그 아이의 부탁을 거절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목적은 잘 마치고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목적은 그 아이의 실력의 향상에 있었고, 시간을 잘 활용하여 제 시간 내에 마치는 훈련을 쌓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힘 없이 뒤돌아서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아팠다.


하나님은 이익에 눈이 먼 악덕기업주와 같은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복지를 생각하는 사랑이 많은 아버지와 같은 분이다. 만일 어떤 아버지에게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있는데, 마라톤 경주에 나가서 1등은 하지 못했지만 42,195km를 완주하고 헐떡거리며 들어왔다면, 그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등을 두드려 줄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아버지에게 다른 늦동이 아들이 있어서 이제 한 살짜리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 아들이 일어나서 뒤뚱거리며 두세 발자국을 걷다가 넘어지면,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네 형은 마라톤을 뛰는데 왜 너는 그렇게밖에 못하느냐며 책망하겠는가? 아니면 달려가서 “그렇지 그렇지, 잘 한다. 정말 잘 한다” 박수치며 좋아하겠는가?


하나님은 탁월한 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자를 찾는다. 종종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뛰어난 업적을 보면서 주눅이 들 때가 많다. 교회 내에서 구역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약간 다른 구역에 뒤쳐지기라도 하면 이내 실망하고, 심지어  다른 교회와 비교해서 자신의 교회가 규모가 작으면 이내 좌절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뛰어난 자가 필요하신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에 있는 달란트 비유를 보면서 종종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가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닐까 오해할 수 있겠지만(이것이 비유가 갖는 약점일 수 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달란트 비유에서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가 탁월함이 아니라 신실함임을 표현하셨다. 그 가운데 하나는 주인이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나 두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정확하게 똑같은 칭찬을 한다는 사실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 (마 25:21, 23). 일등만을 기억하고 일등만을 칭찬하는 한국적 분위기와 얼마나 다른가? 하나님은 일등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자를 칭찬하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인의 칭찬의 핵심은 많은 것을 남긴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하고 신실한 종”이었음을 칭찬하는 것이고, “적은 일”이지만 “신실하게 충성하였다”는 점이다.


탁월함을 강조하는 거짓 메시지가 난무한 이 시대에 신실함의 회복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탁월함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신실함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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