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성경연구소

사다리

WebServant 2011.02.23 11:14 조회 수 : 1354

사람은 천성적으로 동물들에 비해 신체적인 조건이 빈약하다. 사람은 치타처럼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새들처럼 날지도 못하며, 물고기처럼 물속을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여러 가지 도구들을 개발하여 활용함으로써 그런 신체적 단점들을 극복한다. 사다리는, 기린과는 달리 키가 크지 않은 작은 인간들이 높은 곳에 닿기 위해 고안한 기발한 도구이다. 언제 누가 최초로 사다리를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다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은 보통 사람의 키로서 닿을 수 없는 그곳까지 접근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높은 고층 아파트로 이사를 하는데 사다리차를 활용한다. 층계를 이용하여 짐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손쉽게 아파트 베란다로 이삿짐을 나르는 것이다. 소방차에도 사다리차가 있어서, 높은 곳에서 불이 났을 때 직접 소방호수를 통해 물을 고층 아파트에 뿌려댈 수 있다. 우리 교회의 천정은 높아서, 천정에 달린 고장난 전등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반드시 이용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지붕을 손보기 위해서, 혹은 높은 곳에 무엇인가를 올려놓기 위해서 사다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사다리는 사회적 신분을 높이는 데에도 필요한 모양이다. 요즘에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러한 유학의 목적이 학문을 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스펙 쌓기(이력서에 넣을 경력을 만들어가는 것) 차원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젠 한국에서 직장을 얻으려면, 대학을 졸업했다는 졸업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지 이미 오래 되었고, 해외에서 경험 등등 여러 가지 남들과는 다른 경력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미국에 연수를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장점이 될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수를 필수 과정으로 여기고 이력서에 채워 넣고 있으니, 이제는 그 사다리의 효용성이 떨어지고 더 큰 사다리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사다리를 타고 있으니, 그런 평범한 사다리와는 차원이 다른 고가 사다리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요즘은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한 사다리로 소셜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여기는 모양이다. 과거에는 능력이 탁월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스펙 쌓기에 주력했다면, 지금은 능력의 탁월에 추가하여 인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인맥 쌓기가 유행이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페이스북(Facebook)은 이러한 욕구를 어느 정도 채워주고 있는 것 같다. 페이스북을 하고 있노라면, 오프 라인(off line)에서 그렇게 별로 친숙한 관계가 아니었던 사람들로부터 친구 신청이 들어오고, 조그마한 연결고리라도 있으면 친구를 쉽게 맺는다. 어떤 사람은 페이스북의 친구관계가 몇 명인가로 자신의 존재감(identity)을 확인하려는 경향까지 있다. 벌써 몇몇 유명인은 친구 관계가 5,000명을 넘어서서 더 이상 친구를 받을 수 없다고 은근히 자랑하며 불평하는 것도 보았다.

문제는 관계가 신분상승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될 때, 그 관계는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신분상승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로서의 가치가 없어질 량 싶으면, 더 길고 더 튼튼한 사다리를 찾기 위해 버려지고 말 것이다. 생각만 해도 서글퍼진다.

때론 사람들이 하나님도 사다리처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될 때가 많다. 높은 곳에 있는 그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꺼내 오지만, 그 무엇인가를 이루고 나면 다시 창고에 사다리를 집어넣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오직 긴박하고 필요한 순간인 경우가 많다. 특히 기도가 그렇다.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기도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기도하며 매달리는 것이 꼭 사다리를 찾는 느낌이다.

내가 군목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군인들의 진급심사 기간만 되면 장교들과 그 가족들이 새벽기도에 열성을 보였다. 그래서 진급을 위해서 그들을 새벽마다 울부짖었다. 그런데 진급 발표가 난 뒤에는 그 새벽기도의 열기가 사르르 사라지고 말았다. 기도의 사다리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셈이다.

모두가 높이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를 찾고 있는 것과는 달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사다리가 있었다.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하는 길에서, 야곱은 꿈에서 사다리를 보았다. 그 사다리는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그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였다( 28:12). 이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사다리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신분상승을 꾀하는 사다리는 아니었다. 아마도 처량한 모습의 야곱을 향해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다리였을 것이다.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버린 야곱이었고, 그의 앞날은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두려웠던 야곱이었다. 그런데 그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푸시며, 관계를 맺으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다리가 사람의 사다리와 다른 점이었다.

그 옛날 야곱에게 사다리를 통해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이 세상으로 오셨다. 주님의 사다리는 내려오는 사다리였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으로서는 우리를 이용하여 신분상승을 꾀할 일이 없으신 분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한 사다리가 되어 주셨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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