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성경연구소

한국교회의 오적(五賊)

관리자 2017.07.12 17:09 조회 수 : 10

얼마 전 하이패밀리의 송길원 목사는 한국교회의 오적(五賊)으로 드럼, 대형 스크린, 주여 삼창 기도, 단체급식같은 성찬식, 그리고 청바지와 같은 싸구려 복식이라고 자신의 SNS에 올렸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급히 사과문을 다시 올렸다. 원래의 제목이 몰매 맞을 각오로 올리는 글이라면 그만큼 소신을 가지고 올린 것이었을 텐데 며칠 만에 자신의 소신을 꺾고(?) 사과문을 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안쓰러웠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사건을 계기로 과연 한국 교회의 오적(五賊)이 정말 무엇인가에 대한 주장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그러한 주장들을 대하면서 우리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송길원 목사가 이러한 효과를 노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실없는 유머로 웃게 만들고 그러는 가운데 진리를 보게 하는 송길원 목사 특유의 어법이었을는지도 모른다고 애써 자위해본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교회의 진짜 오적(五賊)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진짜 적은 참된 복음을 대신해버린 “번영신학”이다. 철저한 부패와 타락 때문에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참된 복음의 메시지는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이 세상에서의 형통을 추구하는 번영신학이 한국교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언약궤를 블레셋과의 전쟁에 가지고 가서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해먹으려고 했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신앙을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얻는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린 번영신학이야말로 한국교회의 가장 큰 적이다.

 

이러한 번영신학이 활개를 치게 만든 것은 우리 속에 파고든 “미신적인 관점”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을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시켜야 한다는 종교개혁적 원리(sola scriptura)는 한국교회에서 실종된 지 오래고, 놀랍게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식의 미신적인 관점이 한국교회의 신학과 신앙에 깊이 파고들어 왔다. 놀랍게도 이런 미신적인 관점을 강화시킨 책임에서 한국 신학자들이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교회의 현재 모습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적 신앙행태”를 많이 닮아 있다. 이러한 율법주의적 신앙행태는 참된 복음을 잃어버리고 번영신학을 추구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놀랍게도 대다수의 한국교회의 강단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가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가와 같은 강연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그러한 해답으로 주어진 것이 율법주의적 신앙이다. 헌금을 많이 하거나, 종교적 열정에 힘쓰면, 최선을 다하면, 더 나아가 마음을 비우면 성공할 것이라는 가르침이 난무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성공할 수 있다면, 도대체 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겠는가? 율법주의적 신앙은 우리의 철저한 무능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야만 했고 십자가에 못박혀야 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한국교회를 타락하게 만든 또 하나의 적은 “신앙도 성공의 척도로 바라보는 세속적 관점”이다.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의 단독자로 서는 것(마 6:1)인데, 사탄은 신앙마저도 성공의 관점으로 재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전도왕, 맨손으로 개척하여 대형교회를 일군 목사, 주일학교 학생들이 많은 교회, 이웃들에게 사랑을 많이 베푸는 교회 등등 신앙은 어느새 사람들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고, 그러한 평가에서 박수 받는 사람과 교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대형교회를 일구지 못하면, 또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신실한 경건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이란 실패자들의 변명거리로만 치부되는 형편이다.

 

마지막으로 본질에 주목하지 못하고 형식에만 매어달리는 “형식주의”가 한국교회의 오적 가운데 하나이다. 찬양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마음속에서부터 올리는 찬양이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드럼이 문제라느니 복식이 문제라느니 하고 시비를 건다. 우리가 자라 온 문화는 신앙보다 더 강한 것이어서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인정할 수 없고, 그들의 신앙은 거짓으로 몰아가는 문화적 편견 속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신앙을 돕기 위해 마련된 여러 가지 문화들이 하나의 전통이 되어버리고, 알맹이는 빠진 채 그 전통이 마치 진리인양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신학적으로 훈련되지 못한 일반 신도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에게서 더욱 많이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옛날 바리새인들처럼 말이다.

 

오적(五賊)들로 가득 찬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을까? 누군가는 그래도 깨어 있는 양심을 가진 분들이 소망이라고 말한다. 강호에 고수들이 있듯이,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신실하게 사역하는 목회자들과 정말 순수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무명의 성도들이 우리 한국교회의 소망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안타깝게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적(五賊)을 말하는 것은 사실 위험한 일이다. 오적(五賊)을 규명하는 순간 규명하는 사람은 그 한국교회를 망친 주범에서 살며시 빠지게 되는 것이고, 또한 그 글에 동조하는 사람도 그런 주범에서 혐의를 벗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그 주범의 혐의에서 벗어나게 되고, 실체 없는 오적(五賊)만을 세워놓고 돌을 던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로 한국교회를 망친 주범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이다. 그리고 내 글을 함께 읽고 동조하는 바로 우리가 주범이다. 한국교회를 망친 주범의 얼굴이 누군가 하고 우물을 들여다보면 바로 그 속에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우리는 오적(五賊)들이 활개 치도록 방치하고 있는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심지어 우리 자신이 오적(五賊)처럼 행동하고 있는 점에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깨어 있는 양심을 가진 무명의 신실한 성도들도 실체가 없다.

 

한국교회의 소망이 있다면, 오직 예수님뿐이다. 더럽고 추한 모습을 가진 우리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신앙마저도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바꾸어버리는 죄성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자복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소망도 없다. 오늘도 주님의 은총을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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