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성경연구소

전달되지 않은 사랑

WebServant 2010.08.17 07:47 조회 수 : 1686

며칠 전 아는 지인으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목사님, 혹시 제가 보낸 아마존 기프트 카드를 받으셨나요? 벌써 몇 주가 지났는데요.” 필자가 지난 5월에 노쓰 웨스트 대학 신학부에서 마태복음에 나타난 이방인 선교라는 주제의 논문을 써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된 것을 축하하는 뜻으로 아마존 기프트 카드를 하나 주문하여 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 기프트 카드를 받아놓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생각했던 모양이다. 기다리다 못해 내게 받았는지 확인 문의를 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 보아도 나는 받은 기억이 없었다. 혹시 우리 식구들 중에 누군가 그 기프트 카드를 받고도 내게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생각하며, 식구들에게도 물어 보았지만, 그 누구도 받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정크메일의 홍수 속에서, 그분의 선물카드도 정크메일인 줄 알고 뜯어보지도 않은 채 휴지통 속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못 받았다고 답장을 보냈다.

아마도 아마존에 연락하면 그 카드의 금액을 다시 찾거나 다른 카드로 돌려주는 방법이 있을 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선물카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안해서 사용하지 않을테니까.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정크메일처럼 취급해 버리지는 않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하도 쓸데 없는 편지들이 넘쳐나니까, 그 사이에서 정말로 내게 필요한 편지들도 없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교회들과 그리고 설교 CD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흔해빠져 소중하지도 귀중하지도 않은 것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청교도 시절에는 교회가 성도들의 삶에 대해서 훈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경계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교회가 성도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잘못을 조금이라도 지적하면, 그 교회를 훌쩍 떠나버릴 수 있다. 아무런 마음에 부담감이 없이 다닐 수 있는 교회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으니까 말이다. 칼뱅을 비롯하여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참된 교회의 지표(signs)에는 바른 말씀의 선포와 바른 성례의 시행과 더불어, 권징의 시행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 시대는 권징이 사라진 시대이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여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했을 때,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윗을 책망했다. 성경에서는 언제나 그렇지만, 하나님의 책망은 하나님의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 책망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표현이었고, 다윗의 잘못을 회개시켜서 하나님의 아들로 계속 살아가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열심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책망 속에서 다윗은 회개했고,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았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범죄한 후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 쓴 시편으로, 이렇게 노래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10-11). 하나님의 책망하심도 사랑인데, 그 사랑을 무시하거나 쓰레기 취급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아마존에 연락하더라도 그 금액을 다시 찾거나 다른 카드로 대치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문했던 사람이 그 정보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지만 그 카드는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분이 내게 보여주려했던 사랑에 대해서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사용할 수 없이 없어져버린 그 금액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는 배달사고가 많다. 몇년 전 West Chester에서 Goshen Deli를 운영하시는 우리 교회 성도님이 이 지역에서 아틀란타로 이주한 사람이 주문한 호기(Hoagie)를 드라이 아이스로 패킹해서 익스프레스 메일로 보낸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아이의 이름을 호기(Hoagie)라고 지을 정도로 필라델피아 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아들의 이름을 치즈 스테이크라고 짓고 싶었지만, 아내의 만류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아틀란타로 보낸 이 호기는 배달되지 않고 중간에 사라져 버렸다. 집사님은 할 수 없이 다시 보내야 했고, 그 일은 데일리 뉴스에 보도되었다.

다행스런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분실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들을 예정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하셨다면, 중간에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들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위험에 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결국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결코 중간에 분실될 수 없다.

칼빈주의 5대 교리 가운데 네 번째인 항목은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인데, 이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선택한 사람들에게 주시기로 한 은혜는 사람의 편에서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효과적인 은혜(efficacious grace)라고도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은 우리에게 배달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우리에게 열매를 맺는다. 칼빈주의 5대 교리 가운데 다섯번째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선택하신 성도들이 중간에 포기되는 법이란 없다.

이사야 선지서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결코 중간에 실패되는 법이 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이사야 5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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