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좌 예상문제 (1)

전북신학원 요한복음 해석 강좌 2021년도 기말고사를 위한 예상 문제입니다.

– 다음의 문제들 중에서 기말고사에 나올 수 있습니다.
– 다음의 예상 문제에 없던 내용이라 할지라도 수업 중에 다룬 내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

1. 요한복음의 특징은? (즉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다른 독특한 특징은 무엇인가?)

2. 요한복음의 저자로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누구인가?

3. 요한복음은 어디에서 쓰여졌을 가능성이 있는가?

4.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어느 정도 (즉 몇 % 정도) 유사한 내용인가?

5.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인가?

6. 요한 사도가 요한복음을 썼다고 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 증거는 무엇인가?

7. 에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당한가? 그 이유는?

8. 요한복음의 저자가 사도 요한일 것 같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떤 것이 있는가?

9. 한때 요한복음이 2세기 후반에 쓰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10. 요한복음의 2세기후반 저작설이 깨진 것은 무엇을 발견하면서인가?

11. 예루살렘 성전 파괴(A.D. 70년) 이전에 요한복음이 쓰였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이 있는가?

12. 요한복음의 역사적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졌던 이유는 무엇이 있는가? 그에 대한 반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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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14.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삼위일체를 반대하고 하나님보다 급이 낮은 존재로 보는 사람들은 요 1:1의 어떤 점을 지적하는가? 그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은 무엇인가?

15. 요 1:12에서 영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6. 요 1:13에서 혈통이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17. 요 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선언은 헬라인들에게는 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표현인가?

18. 요 1:14에서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할 때, 이 표현은 무엇을 연상시키는가?

19. 요 1:14에서 독생자라고 번역된 단어인 “모노게네스”의 의미는 무엇을 뜻하는가?

20. 요 1:14에서 로고스에게 은혜와 진라가 충만하다고 표현하는데, 이 표현은 원래 누구에게 해당되는 표현이었는가?

21. 요 1:16에서 “은혜 위에 은혜”라는 표현은 어떻게 번역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22. 요 1:19에서 세례 요한에 대하여 알아보라고 사람들을 보낸 “유대인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23. “그리스도”, “메시야”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24. 마지막 때에 엘리야가 올 것이라는 예언은 어디에 있는가?

25. 에수님은 세례 요한을 엘리야라고 하는데, 세례 요한이 스스로를 엘리야가 아니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26. 마지막 때에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실 것이라는 예언은 어디에 있는가?

27. 세례라는 의식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28. 세례라는 의식이 기본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29. 이방인 중에서 유대교 신앙을 받아들이며 회당에 참여하고 율법을 지켰지만, 할례를 통한 완전한 개종의 단계까지는 가지 않은 사람들을 무엇이라고 불렀나?

30. 신발끈을 푸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31. 요단강 건너편은 어디를 가리키는 표현인가?

32. 예수님을 어린 양이라고 표현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한복음 기말고사 예상문제 (2)

요한복음 기말고사 예상문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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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좌 12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로(1:35-39)1

1:35-36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 다음 날이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오셨을 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했던 그 다음 날을 가리킬 것이다. 요한과 함께 있던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안드레였다(1:40). 다른 제자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요한은 다시 한 번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했다.

1: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3: 세례 요한의 두 제자는 요한의 증언에 따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러한 설명은 공관복음에서의 설명과는 차이가 있다(마 4:18-204; 막 1:16-185; 눅 5:3-116).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갈릴리 바다에서 부르신 것으로 묘사하는 것에 반하여, 요한복음은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사역하던 세례 요한과 연관시킨다.

1: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7: 랍비라는 단어는 유대인들이 모를 리 없는 단어이다. 그런데 여기서 친절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요한복음이 아마도 에베소라는 곳에서 쓰여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그곳에 있는 헬라인들에게 유대 용어와 관습의 해설이 필요했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디에 머무시는가가 궁금하였다.

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8: 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 예수님과 함께 그날 밤을 함께 하였다. 10시는 해가 뜬 후 10시간이 지난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오늘날의 시간으로 오후4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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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를 데리고 온 안드레(1:40-42)9

1: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10: 요한의 말을 듣고 에수님을 따르게 된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안드레이다. 나머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제자가 누구냐는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종종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 즉 요한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고(13:2311; 19:2612; 21:713, 2014),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15: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이야말로 오랫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려왔던 메시야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요한복음 자체에는 안드레가 어떤 모습을 보고 메시야로 확신하게 되었는지를 밝히지는 않는다. 메시야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고, 이 말을 헬라어로 하면 “그리스도”가 된다. 요한복음은 아마도 에베소 지역에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메시야의 의미를 헬라어로 번역하고 있다.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16: 예수님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과 같은 역할을 주시는 의미에서 게바라고 불렀다(마 16:1817). 요한복음에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등장하지 않지만, 베드로가 했던 그 신앙고백이 교회의 기초가 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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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2. Τῇ ἐπαύριον πάλιν εἱστήκει ὁ Ἰωάννης καὶ ἐκ τῶν μαθητῶν αὐτοῦ δύο καὶ ἐμβλέψας τῷ Ἰησοῦ περιπατοῦντι λέγει Ἴδε ὁ ἀμνὸς τοῦ θεοῦ[]
  3. καὶ ἤκουσαν οἱ δύο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λαλοῦντος καὶ ἠκολούθησαν τῷ Ἰησοῦ[]
  4.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5.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6.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7. στραφεὶς δὲ ὁ Ἰησοῦς καὶ θεασάμενος αὐτοὺς ἀκολουθοῦντας λέγει αὐτοῖς Τί ζητεῖτε οἱ δὲ εἶπαν αὐτῷ Ῥαββί ὃ λέγεται μεθερμηνευόμενον Διδάσκαλε ποῦ μένεις[]
  8. λέγει αὐτοῖς Ἔρχεσθε καὶ ὄψεσθε ἦλθαν οὖν καὶ εἶδαν ποῦ μένει καὶ παρ’ αὐτῷ ἔμειναν τὴν ἡμέραν ἐκείνην ὥρα ἦν ὡς δεκάτη[]
  9.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10. ἦν Ἀνδρέας ὁ ἀδελφὸς Σίμωνος Πέτρου εἷς ἐκ τῶν δύο τῶν ἀκουσάντων παρὰ Ἰωάννου καὶ ἀκολουθησάντων αὐτῷ[]
  11.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12.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13.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14.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15. εὑρίσκει οὗτος πρῶτον τὸν ἀδελφὸν τὸν ἴδιον Σίμωνα καὶ λέγει αὐτῷ Εὑρήκαμεν τὸν Μεσσίαν ὅ ἐστιν μεθερμηνευόμενον χριστός[]
  16. ἤγαγεν αὐτὸν πρὸς τὸν Ἰησοῦν ἐμβλέψας αὐτῷ ὁ Ἰησοῦς εἶπεν Σὺ εἶ Σίμων ὁ υἱὸς Ἰωάννου σὺ κληθήσῃ Κηφᾶς ὃ ἑρμηνεύεται Πέτρος[]
  17.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요한복음 강좌 11

하나님의 어린양(1:29-34)1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 요한복음은 세례요한에게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1:32-333을 보면, 그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ὁ ἀμνὸς τοῦ θεοῦ ὁ αἴρων τὴν ἁμαρτίαν τοῦ κόσμου)이라는 사실은 예수님이 사람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희생제물이 될 것임을 뜻한다. 세례 요한도 그런 의미로 이해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듣고서 오실 그이가 바로 예수님인지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마 11:34; 눅 7:19-205).

1: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6: 시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등장과 사역은 요한보다 뒤이다. 그래서 “내 뒤에 오는 사람”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태초부터 존재하였던 로고스였다. 따라서 예수님은 요한 보다 “먼저 계신” 분이었다. 시간적으로도 예수님은 요한보다 앞선다.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논쟁을 하는 가운데,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대답하신 바 있다(8:587). 그런데 요한이 “나보다 앞섰다”고 말하는 이유는 등급에 있어서 더 높으신 분, 또는 위대하신 분이라는 의미일 수 있다.

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8: 요한은 예수님과 친인척 관계이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친족(ἡ συγγενίς σου, 눅 1:36)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한이 예수님을 몰랐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요한이 예수님을 몰랐다고 한 것은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야라는 사실을 몰랐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세례를 베푸는 과정을 통해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가에 대하여 분명히 알게 되었고, 그 메시야를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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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9: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관복음에서는 기록하고 있다(마 3:13-1710; 막 1:9-1111; 눅 3:21-2212).

성령께서(τὸ πνεῦμα) 비둘기 같이(ὡς περιστερὰν) 하늘로부터(ἐξ οὐρανοῦ) 내려왔다(καταβαῖνον)는 것은 비둘기의 형상으로 내려와 앉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으시는 영이신 분께서 이 순간만큼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방식으로 형체로 임하였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마치 비둘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앉을 때에는 사뿐히 내려와 앉는 것처럼, 성령의 임하는 것이 아주 고요하게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지만 임재하였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물론 누가복음에서는 전자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σωματικῷ εἴδει)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눅 3:22).

이러한 성령의 임재는 예수님이야말로 구약 이사야서에서 예언한 메시야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 11:1-2; cf. 42:113; 61:114).

왜 하필이면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상으로 임하였을까? 사자나 어린 양의 형상이 아니고?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구절을 통해 유추하면, 성령께서는 순결한 분이시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15: 요한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몰랐던 것은 아닐 것이다. 세례를 받는 현장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하면서 세례를 받는 것을 말렸다(마 3:14). 이 표현은 예수님이 메시아인줄은 미처 몰랐다는 뜻이다.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16: 복음서는 세례 요한이 부름을 받는 장면을 생략한다. 하지만 그에게 사명을 주고 세례를 베풀도록 부르시고 보내신(요 1:6)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를 부르시고 보내신 분(하나님)께서 예수님이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라는 것을 드러내주셨다.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17: 예수님도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3:2218, 2619). 하지만 세례를 직접 베푼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4:1-220). 하지만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어떤 신비하고 초월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7:38-39에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는 것은 요한복음에서는 영생을 얻는 것,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더러운 죄를 씻는 것을 상징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물로 하는 세례는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 즉 영생을 얻는 것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저 상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죄를 씻겨주시고 결과적으로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21: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에서 아들은 “휘오스”(ὁ υἱὸς)로 표현되었다. 우리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테크논)가 될 것이라고 한 표현과 다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이듯,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아들이라는 비유는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고 전혀 다르지 않은 속성을 가진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다(cf. 요 5:1822. 제2성전기23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용어로 종종 사용되었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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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2. Τῇ ἐπαύριον βλέπει τὸν Ἰησοῦν ἐρχόμενον πρὸς αὐτόν, καὶ λέγει Ἴδε ὁ ἀμνὸς τοῦ θεοῦ ὁ αἴρων τὴν ἁμαρτίαν τοῦ κόσμου[]
  3.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4.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5.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6. οὗτός ἐστιν ὑπὲρ οὗ ἐγὼ εἶπον Ὀπίσω μου ἔρχεται ἀνὴρ ὃς ἔμπροσθέν μου γέγονεν ὅτι πρῶτός μου ἦν[]
  7.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8. κἀγὼ οὐκ ᾔδειν αὐτόν ἀλλ’ ἵνα φανερωθῇ τῷ Ἰσραὴλ διὰ τοῦτο ἦλθον ἐγὼ ἐν ὕδατι βαπτίζων[]
  9. καὶ ἐμαρτύρησεν Ἰωάννης λέγων ὅτι Τεθέαμαι τὸ πνεῦμα καταβαῖνον ὡς περιστερὰν ἐξ οὐρανοῦ καὶ ἔμεινεν ἐπ’ αὐτόν[]
  10.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1.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3.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14.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5. κἀγὼ οὐκ ᾔδειν αὐτόν[]
  16. ἀλλ’ ὁ πέμψας με βαπτίζειν ἐν ὕδατι ἐκεῖνός μοι εἶπεν[]
  17. Ἐφ’ ὃν ἂν ἴδῃς τὸ πνεῦμα καταβαῖνον καὶ μένον ἐπ’ αὐτόν οὗτός ἐστιν ὁ βαπτίζων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18.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19.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0.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21. κἀγὼ ἑώρακα καὶ μεμαρτύρηκα ὅτι οὗτός ἐστιν 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22.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23. 구약과 신약 사이의 기간을 일반적으로 중간기로 불렀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것은 기독교의 관점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여서, 유대교도들도 사용할 수 있는 좀더 포용적인 표현인 제2성전기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한다. 즉 솔로몬의 첫번째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기 귀환 후에 두번째 성전이 세워진 이후의 기간을 가리킨다.[]
  24. 4QFlor 1:10-14; 1QSa 2:11-12; 4QpsDan A2(4D246) 2:1[]

요한복음 강좌 10

세례요한의 증언(1:19-28)1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2: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언급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인 언급이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유대인이란 예루살렘의 산헤드린3 의회원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몇명을 보내어 당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던 세례 요한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였다.

1: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4: 세례 요한은 그 빛이 아니었다(1:85). 그는 이 사실을 잘 알았고, 오직 빛이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1: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6: 세례요한의 대답은 뜻밖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메시아인 것처럼 주장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었기 때문이다(행 5:33-397; 21:37-398, cf. 마 24:249; 막 13:2210).

세례요한에게 네가 엘리야냐고 물어본 것은 말라기 4:511의 예언을 생각나게 한다. 1세기 유대인들은 엘리야적 인물을 고대했었다(마 16:1412; 막 6:1513; 8:2814; 눅 9:815, 1916). 예수님도 이 점을 언급하셨다(마 17:10-1117; 막 9:11-1218). 예수님게서 십자가 위에서 소리를 지르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엘리야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마 27:4719, 4920; 막 15:35-3621).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사가랴에게 나타난 천사는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올 것이라고 말했었다(눅 1:1722). 또한 예수님은 요한이 엘리야였다고 했다(마 11:1423; 17:1224; 막 9:1325).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26: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요한이 바로 그 선지자인가를 물었다. 이 선지자는 구약에서 오리라고 약속된 선지자를 뜻한다. 모세는 죽기 전에 자신과 같은 선지자를 하나님게서 일으키실 것이라고 한 바 있다(신 18:1527, 18-1928). 1세기 유대인들은 그 선지자가 올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이 바로 그 선지자인가 생각했었다(요 6:1429; 7:37-4430). 초기 크리스천들은 바로 그 선지자가 예수님이라고 받아들였다(행 3:19-2331; 7:3732).

1:22-23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33: 요한의 대답은 이사야 40:3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요한은 메시야보다 먼저 와서 그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였다.

1:24-25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34: 세례는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하던 의식이었다. 또한 쿰란 종파와 같은 곳에서 의식적 정결례와 같은 것이었다. 물로 씻는 것은 죄를 씻는다는 것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세례요한이 유대인들을 상대로 세례를 베푼 것은 그들의 죄를 씻는다는 회개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참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는 행위는 종말론적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을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1: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35: 요한은 물로(ἐν ὕδατι) 세례를 준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물에서”(in water)로 번역할 수도 있는 표현이기는 하다. 그래서 침례교도들은 이 표현이 침례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물에서”(장소의 여격) 세례를 준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물을 가지고”(수단의 여격) 세례를 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36: 에수님께서는 이미 그들 가운데 와 있었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을 알지 못했다. 이름은 알 수 있었겠지만, 그분이 바로 로고스이며 자기 땅으로 오신 빛이시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37: 예수님을 세례요한 뒤에 오시는 분이라고 소개한 것은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세례 요한의 사역보다는 뒤에 발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적으로는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그분은 요한보다 훨씬 더 높은 분이시다. 그래서 자신이 예수님의 신발 끈을 푸는 것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1세기 상황에서 종들은 주인의 신발끈을 푸는 일을 했다.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흙먼지가 발에 끼게 되는데, 종들은 신발끈을 풀고 주인의 발을 씻겨주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그럴만한 위치에도 있지 않다고 고백하였다. 가장 낮은 자보다도 더 낮은 자라는 겸손함의 표현이었다.

1: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38: 요단강 건너편(πέραν τοῦ Ἰορδάνου)이란 표현은 요단강 동쪽 지역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베다니라는 곳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지명으로도 사용된 것인데(11:139, 1840), 12:141), 세례 요한의 활동지였던 베다니는 그 베다니와는 다른 베다니이다. 요단강 동쪽에 위치한 베다니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베다바라(Bethabara)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바타네아(Batanea)를 의미하는 것인지 논의가 있다.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어떤 곳을 지칭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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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2. Καὶ αὕτη ἐστὶν ἡ μαρτυρία τοῦ Ἰωάννου ὅτε ἀπέστειλαν οἱ Ἰουδαῖοι ἐξ Ἱεροσολύμων ἱερεῖς καὶ Λευίτας ἵνα ἐρωτήσωσιν αὐτόν Σὺ τίς εἶ[]
  3. 유대인들의 산헤드린은 아마도 BC 3세기경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유대인들의 최고 자치기구였다. 71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은 제사장, 사두개인,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족장)들로 구성되었다. 로마는 산헤드린의 수장을 직접 임명하였다. 예수님 당시의 산헤드린 수장은 A.D 6-10년경 유대 총독으로 있었던 코포니우스에 의해 임명된 대제사장 안나스였다.[]
  4. καὶ ὡμολόγησεν καὶ οὐκ ἠρνήσατο καὶ ὡμολόγησεν ὅτι Ἐγὼ οὐκ εἰμὶ ὁ χριστός[]
  5.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6. καὶ ἠρώτησαν αὐτόν Τί οὖν σὺ Ἠλίας εἶ καὶ λέγει Οὐκ εἰμί[]
  7.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8.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9.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10.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11.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12.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3.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4.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16.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17.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8.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9.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20.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21.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22.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23.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25.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26. Ὁ προφήτης εἶ σύ καὶ ἀπεκρίθη Οὔ[]
  2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2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29.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30.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31.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32.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3. εἶπαν οὖν αὐτῷ· Τίς εἶ; ἵνα ἀπόκρισιν δῶμεν τοῖς πέμψασιν ἡμᾶς τί λέγεις περὶ σεαυτοῦ ἔφη Ἐγὼ φωνὴ βοῶντος ἐν τῇ ἐρήμῳ Εὐθύνατε τὴν ὁδὸν κυρίου καθὼς εἶπεν Ἠσαΐας ὁ προφήτης[]
  34. Καὶ ἀπεσταλμένοι ἦσαν ἐκ τῶν Φαρισαίων καὶ ἠρώτησαν αὐτὸν καὶ εἶπαν αὐτῷ Τί οὖν βαπτίζεις εἰ σὺ οὐκ εἶ ὁ χριστὸς οὐδὲ Ἠλίας οὐδὲ ὁ προφήτης;[]
  35. ἀπεκρίθη αὐτοῖς ὁ Ἰωάννης λέγων Ἐγὼ βαπτίζω ἐν ὕδατι[]
  36. μέσος ὑμῶν ἕστηκεν ὃν ὑμεῖς οὐκ οἴδατε[]
  37. ὁ ὀπίσω μου ἐρχόμενος οὗ οὐκ εἰμὶ ἄξιος ἵνα λύσω αὐτοῦ τὸν ἱμάντα τοῦ ὑποδήματος.[]
  38. ταῦτα ἐν Βηθανίᾳ ἐγένετο πέραν τοῦ Ἰορδάνου ὅπου ἦν ὁ Ἰωάννης βαπτίζων[]
  39.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40.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ὡς ἀπὸ σταδίων δεκαπέντε) 되매. 15 스타디온(=600feet, 185m[]
  4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요한복음 강좌 9

세례요한의 증언(1:15)1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2: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다(눅 1:24-313). 그리고 세례요한의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보다 시간적으로 앞섰다. 물론 사역이 중첩되는 기간이 있었기는 했지만(3:22-244). 하지만 예수님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태초부터 선재하셨다(1:15).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기 자신보다 예수님이 앞선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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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아버지를 나타냄(1:16-18)6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7: 1:14에서 성육신하신 로고스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분의 충만함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데 차고 넘친다는 의미.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은 헬라어로 “(예전의) 은혜를 대체하는 (새로운) 은혜”(χάριν ἀντὶ χάριτος)로 이해할 수도 있다.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8: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었다. 만일 1:16에서 말한 것이 “은혜를 대체하는 새로운 은혜”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 대체되어진 은혜는 곧 모세가 준 율법을 지칭할 수 있다. 율법도 은혜였다. 하지만 그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자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은혜를 허락해주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인데,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 새로운 은혜이다.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9: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가 볼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을 본 사람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품 속에 있던 로고스께서 사람들에게 보이는 방식으로 나타나셨다. 로고스가 하나님의 품속에 있었다는 표현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친밀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더 나아가 로고스가 바로 하나님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타내셨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엑세게오마이”(ἐξηγέομαι)로서 “설명한다, 해설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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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2. Ἰωάννης μαρτυρεῖ περὶ αὐτοῦ καὶ κέκραγεν λέγων· Οὗτος ἦν ὃν εἶπον Ὁ ὀπίσω μου ἐρχόμενος ἔμπροσθέν μου γέγονεν ὅτι πρῶτός μου ἦν[]
  3.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4.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7. ὅτι ἐκ τοῦ πληρώματος αὐτοῦ ἡμεῖς πάντες ἐλάβομεν καὶ χάριν ἀντὶ χάριτος[]
  8. ὅτι ὁ νόμος διὰ Μωϋσέως ἐδόθη ἡ χάρις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ἐγένετο[]
  9. θεὸν οὐδεὶς ἑώρακεν πώποτε μονογενὴς θεὸς ὁ ὢν εἰς τὸν κόλπον τοῦ πατρὸς ἐκεῖνος ἐξηγήσατο[]

요한복음 강좌 8

로고스를 영접하는 자(1:12-13)1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2: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로고스를 영접하지 않았지만, 그 가운데 예외적으로 로고스를 영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단순히 로고스를 환영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즉 자신이 로고스에 의하여 창조되고 소유된 자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의 왕좌의 자리를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접한 결과는 노예로 전락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녀가 된다. 이러한 결과는 자신의 권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주인을 거부하는 자들의 경우 심판을 받게되는 것과 대비를 이룬다.

여기서 사용된 자녀는 헬라어로 테크논(τέκνον)이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나타낼 때에는 휘오스(υἱός)를 사용하는 것과 구별이 있다. 다만 바울 사도는 우리 신자들을 하나님의 휘오스(υἱός)라고 표현한다.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3: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은 일반적인 출생방법으로 되지 않는다(=혈통이나 육정으로[=피와 살로] 되지 않는다). 이러한 선언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는 정반대의 선언이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면서 이러한 유대인들의 생각을 뒤집은 바 있다(마 3:8-94; 눅 3:85).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야 하는 것인데,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3장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좀더 분명히 밝혀진다.

로고스가 세상에 옴(1:14)6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7: 로고스가 육체가 되어 우리들 가운데 거하게 되었다는 것은 헬라 철학의 이원론적 관점에서는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헬라 철학에서는 육체와 물질 세계는 악한 것이고 오로지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만이 고상하고 선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아들을 주신 놀라운 일이다(요 3:168).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9: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인류 가운데 오신 것을 묘사하는 것으로 “거하셨다”(ἐσκήνωσεν)고 표현한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장막을 쳤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그 옛날 출애굽 당시에 광야에서 성막을 치고 그 가운데 임재하셨던 것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출 40:34-3810).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11: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로고스가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게 되었다. 그 영광은 한편으로는 독생자의 영광이다. 독생자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이다. 이 단어는 “하나”(μονο)와 “탄생”(γενής)라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어서 “독생자”(only begotten)으로 번역을 해왔다. 어원은 그렇지만,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라는 단어 자체는 유일하게 “태어난” 것에 강조가 있기보다는 “유일하고 독특한, 하나밖에 없는”(unique, one and only) 것에 강조가 있다.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라는 단어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1) 나인 성 과부의 독자를 나타내기 위해서(눅 7:1212) (2) 야이로의 외동 딸을 나타내기 위해서(눅 8:4213) (3) 귀신들린 외아들을 나타내기 위해서(눅 9:3814) (4)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삭을 나타내기 위해서(히 11:1715) (5)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유일한 자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요일 4:916) (6) 요한복음 세군데에서 (1:18; 3:168; 3:1817).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8: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어구 가운데 들어 있던 표현이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그런데 성육신하신 로고스를 묘사하면서 그대로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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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2. ὅσοι δὲ ἔλαβον αὐτόν, ἔδωκεν αὐτοῖς ἐξουσίαν τέκνα θεοῦ γενέσθαι, τοῖς πιστεύουσιν εἰς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3. οἳ οὐκ ἐξ αἱμάτων οὐδὲ ἐκ θελήματος σαρκὸς οὐδὲ ἐκ θελήματος ἀνδρὸς ἀλλ’ ἐκ θεοῦ ἐγεννήθησαν.[]
  4.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5.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6.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7. Καὶ ὁ λόγος σὰρξ ἐγένετο[]
  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9. καὶ ἐσκήνωσεν ἐν ἡμῖν[]
  10.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11. καὶ ἐθεασάμεθα τὴν δόξαν αὐτοῦ, δόξαν ὡς μονογενοῦς παρὰ πατρός[]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14.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15.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7.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8. πλήρης χάριτος καὶ ἀληθεία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