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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른 성경 해석과 문자주의의 위험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자주의의 위험을 피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문자주의란 성경의 정신, 즉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외면한 채 문자의 표현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자주의는 다양하게 나타난 바 있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라고 규정하셨기 때문에 율법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하지만 그렇게 율법에 따라 철저하게 제사를 드린 이스라엘 민족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누가 희생제사를 가져오라고 했느냐?” “나는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다시는 희생제사를 가져오지 말라.” 말씀하셨다. 제사를 드리라고 규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지만 놀랍게도 바로 그 하나님께서 제사를 싫어하신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제사의 근본 목적을 망각했기 때문이었다. 피가 제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드린 피가 하나님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1 희생제사의 목적은 회개에 있었다.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삶의 방향을 돌이켜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회개와는 거리가 멀었다.2 그저 제사만 드렸을 뿐이었고, 다시 나가서 죄를 반복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문자주의에 빠진 이스라엘 민족의 뻔뻔한 제사를 싫어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정확하게 알았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고 선언하였다(16절).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제도를 만드신 분인데, 놀랍게도 다윗은 이런 선언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고백하였다(17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물질적인 제사나 외적인 행동만을 원하시지 않고 사람 전체(the whole man)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았다.3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은 다윗을 회복시켜 주셨다. 다윗은 문자주의의 위험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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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단순히 문자의 규정만을 볼 게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읽어야 한다. 행간을 읽어야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아이를 좀 보고 있으라고 부탁하고 외출을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조치를 해서 아이에게 위험이 생기지 않도록 보호해달라는 의미이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돌보아주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눈으로 아이를 쳐다보고만 있으면 어리석은 남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어리석은 남편처럼 성경을 읽는다. 문자만을 읽는다.

신약시대에 문자주의의 위험에 빠졌던 것은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다. 문자 그대로 지켰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만 위선적인 태도로 율법을 지켰다. 심각한 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외면해버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책망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그들은 문자적으로 아주 세미한 부분까지 다 철저하게 지켰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망각했고, 왜 이런 율법을 주셨는지 무감각했다. 그들은 문자적으로 비교적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해서는 민감했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시했다.4

한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 날 밀이삭을 잘라먹었다. 이것은 분명히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었다. 그랬더니, 즉각적으로 바리새인들이 이들을 정죄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마 12:7) 성경은 안식일을 규정하고 있고, 제자들은 그것을 위반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자비로운 마음이라고 하셨다. 문자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의 저울로 본다면, 의식적인 규정들을 형식적으로 잘 지키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것이 더 중요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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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J. Alec Motyer The Prophecy of Isaiah: An Introduction Commentary. (Downers Grvoe: IVP Academic, 1993), 46.[]
  2. J. Alec Motyer The Prophecy of Isaiah: An Introduction Commentary. (Downers Grvoe: IVP Academic, 1993), 47.[]
  3. Artur Weiser, The Psalms: A Commentary.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2), 409.[]
  4. R. T. France, The Gospel of Matthew. (Grand Rapids: Eerdmans, 2007), 872-873.[]
  5. R. T. France, The Gospel of Matthew. (Grand Rapids: Eerdmans, 2007),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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