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설교의 악용

종종 설교 강단은 하나님께서 전하시기를 원하는 케뤼그마를 선포하는 장소가 아니라, 설교자 자신의 아젠다를 말하는 곳이 되곤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는 제3계명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인데, 놀랍게도 설교자들은 이러한 죄악의 무서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선교사들이 설교 강단을 맡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강단은 선교사의 선교비를 후원해달라고 요청하는 장소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종종 선교사들은 얼마나 자신이 선교지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를 어필하고, 그리고 선교사역을 위해서 얼마나 후원이 절실한지를 감동적으로 말하면서 설교를 하곤 한다. 때로는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인포메이션을 전달하는 것이 설교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넓은 시각으로 보면 성도들을 선교 사역에 동참시키는 것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엄격하게 보면 그건 케뤼그마가 아니다.

설교자로 세움을 받은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그 강단에 세웠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고민해야 한다. 청중들에게 선교할 필요의 절박성을 일깨우고 또한 삶 자체가 선교적(missional)이 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관점을 변화시키고 결단하게 만들도록 자신을 강단에 세웠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전파하는 가운데 자신이 사역하면서 겪었던 경험이나 간증들이 설교의 재료들로 사용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교 전체를 선교 후원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삶는 것은 설교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망각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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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부교역자들이 강단에서 설교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이들이 거룩한 강단 위에서 하나님께서 전하기 원하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강단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충성되게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 은근히 드러내는 목사도 있었고, 담임목사를 비난하기 위한 기회로 삼는 목사도 있었다. 물론 이들이 설교를 이렇게 가볍게 여기게 된 것은 기성의 목회자들에게서 잘못 배운 것이기에 나 스스로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지만, 적어도 젊은 목회자들에게서 이런 태도가 보인다는 것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젊은 목사라고 한다면 그래도 순수하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설교의 악용은 목회자에게 잘 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서 나타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데서 나타나기도 하고, 유대인들을 배우자고 열변을 토하는 메시지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율법적 신앙생활의 강조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는 중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전혀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면, 엄청난 심판을 받을 것이다(약 3: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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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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