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결론

여성을 목사나 장로로 세울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여성이 가르치거나 다스리는 직책을 맡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성경은 상반되는 두 가지 입장을 모두 보여주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남자와 똑같이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고, 그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다. 구약에서도 이미 드보라나 훌다와 같은 여성 사역자가 있어서, 가르치기도 했고 다스리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요엘서에서는 마지막 날에는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부어주어서 그들이 예언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서 이 일이 성취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신약에서도 초대교회 시절에 여성 διάκονος(집사) 뵈뵈가 있었고, 디모데전서 3:11에서는 여성 διάκονος는 어떠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διάκονος는 단순히 구제를 담당하는 것을 넘어서서 세례를 시행하기도 하고,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기도 하는 여성 사역자들의 존재에 대해서 교부들도 인정하고 있다. 초대교회 시절에 가르치는 일을 여성이 감당하였다. 여성 장로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고(딤전 5:2), 브리스길라라는 여성 사역자는 아볼로라는 남자를 가르쳤으며(행 18:26), 유니아라는 여성은 사도들 중에서도 아주 뛰어난 사도였다(롬 16:7).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하면, 여성이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여성이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는 것이 열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말씀이 성경에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이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금하는 말씀(딤전 2:11-15)이 있으며,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고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감독의 자녀으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가르침의 근거로 창조의 질서를 제시한다. 즉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으며, 하와가 속임을 받았던 사실을 제시한다. 이러한 말씀들은 여성의 역할에 제한이 있으며, 따라서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에 여성이 세워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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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렇게 두 가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이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성경 전체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기준이라는 원리(tota scriptura)에 따른 개혁주의적 성경해석은 어느 한 편을 선택하고 다른 한 편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보다 더 깊이 연구하여, 전체적인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하고, 그러한 전체적인 가르침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은 그 전체적인 가르침의 빛 아래서 적절하게 이해해야 한다. 여성 안수와 관련된 성경구절은 어느 해석을 선택하든 난제가 따른다.

결국 우리에게 두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두 해석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해석 공동체인 총회에 달려 있다. 즉,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똑같이 창조된 존재로서, 성경에서 이미 여성들이 가르치고 다스리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처럼, 교회에서 여성도 충분히 가르치고 다스리는 직분이 주어질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해석은 바울서신에 기록된 여성에 대한 금지 규정들이 당시의 문화적이고 특수한 상황에서 제시된 한시적인 금령으로 보는 것을 수반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논의하였다. 즉, 이미 초대교회 시절에도 여성이 가르치는 일을 하였으며, 고린도전서와 디모데전서에 있는 여성이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고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금지한 규정들은 영구불변의 법칙이라기보다는 에베소 교회나 고린도 교회 상황에서 주어진 상황적인 메시지로 이해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즉 여성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진리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함부로 가르친다고 하여 교회를 어지럽히는 상황 속에서 주어진 명령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에서 여성 사제들이 주관하는 방식으로 종교의식을 집행하던 것들이 교회 안에 파고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면서, 주장하는 자세로 가르치지 말 것을 권고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여성들로 하여금 침묵하라고 권고하는 것 같지만, 이러한 권고는 자신의 남편에게 공적인 자리에서 질문하고 도전하여 남편을 수치스럽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고 예배 시간에 떠들지 말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주어진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시의 특수한 상황에서의 질서를 말하는 것으로, 여성들에게 영구히 가르치는 일이 금지된 것으로 볼 필요가 없게 된다.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감독과 집사의 조건은 꼭 남성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성경적 원리에 따라 결혼생활에 충실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여성이 말씀의 사역자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은 초대교회 교부들도 인정했던 것인데(이것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다), 중세를 들어서면서 남성 중심의 성직제도로 바뀌었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유교적인 이해에 따라 더욱 고착화된 면이 있다. 이러한 해석을 총회가 선택한다면, 하나님께서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것에 맞추어, 전면적으로 목사/장로/집사 안수를 허용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사실 이미 우리 교단은 여성으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일을 허용해왔으며, 선교지에서는 가르치는 일 뿐 아니라 성례를 거행하는 것을 허용해왔다.

그런데 여성의 사역을 금지하는 구절을 당시의 문화적이고 상황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난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가르치거나 다스리는 것을 금하는 것이 창조질서에 근거한 것이라고 호소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은 될 수 있지만, 까다로운 난점임에는 틀림 없다.

그래서 정반대로 여성이 가르치지 못하고 남자를 주관하지 못하게 한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이러한 가르침을 영구적인 명령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을 채용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지금까지 우리 교단이 해왔던 잘못된 관행을 과감하게 정정하여야 한다. 여성이 선교사가 되어 해외에서 남성들에게도 복음을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고 성례를 시행하는 것을 총회가 인준하였던 것은 폐기해야 할 것이다. 2013년에 있었던 90회 총회에서 오지에 있는 여성 선교사들의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여성 선교사가 성례를 시행하도록 하였는데, 1 2018년에 있었던 103회 총회에서는 독신 여성 선교사, 홀사모 선교사의 경우 성례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확대하여 받은 바 있다. 2 만일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을 채용하기로 하여 여성에게 가르치는 일이나 남자를 주관하는 일을 금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판단한다면, 이러한 결정은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3 우리의 판단 기준은 상황이 아니라 성경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성 교육 전도사, 여성 교사, 구역장, 권사, 여자, 여성을 큐티 세미나 강사로 세우는 일, 여성을 제자훈련 강사로 세우는 일, 타 교단의 여성 목사를 인정하는 일, 여성 목사가 참여한 교계 연합에 참여하는 일, 타 교단의 여성 목사를 부흥회 강사로 세우는 일, 여성 전도사가 심방하여 남성 성도들을 권면하는 일 등등 포기해야 한다. 4 엄격한 문자적 해석에 의하면, 성경은 단순히 여성에게 안수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일이나 남자를 주관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가르치기도 하고 설교하기도 하는 등 대부분의 사역을 다 하게 하면서 안수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술을 마시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질 것이다.

둘째, 여성이 예배 중에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규정이나, 입맞춤으로 문안하라는 권고들을 엄격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당대의 문화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반면에, 유독 여성 안수와 관련해서만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문자적인 해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한 편에서는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여 해석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해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셋째, 여성이 가르치거나 남자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법칙이며 창조의 법칙이라면, 왜 하나님께서 그 원칙을 스스로 깨셨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성경에서는 다양한 여성 사역자들이 등장한다. 여자 사사 드보라(삿 4:4-5),여자 선지자 훌다(왕하 22:14-15), 여자 집사 뵈뵈(롬 16:1), 브리스길라(행 18:26), 여자 사도 유니아(롬 16:7)와 같은 여성 사역자들이 남자들을 재판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는데, 만일 여성이 가르치지 못하고 주관하지 못하는 것이 창조의 질서라면 왜 이런 예외를 허용하셨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지금도 이런 예외가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반론이 필요하다. 권성수 교수의 증언처럼, 한성교회에서 박윤선 박사가 명향식 여자 전도사를 설교자로 초청하여 1주간 부흥회를 할 수 있었다면, 5 남성의 헤드십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여성으로 하여금 안수하여 사역하게 하는 것은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좀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성경에 있는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갈 때 백성의 지도체제를 바꾸어” 나갔다. 6 예를 들어, 원래 모세의 동역자로 아론만 지정되어 있었지만, 이드로의 제안에 따라 장로들을 세운 것은 새로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창안된 것이었다(출 18:13-16). 이스라엘 민족은 왕의 제도를 나중에 받아들였고(삼상 8:4-9), 예수님은 12 사도만을 선택하셨지만, 교회의 필요에 따라 집사를 세우게 되었다(행 9:1-8). 과거에는 교회 내에 이방인들이 없었지만,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이방인들이 교회에 편입되었고 이를 예루살렘 회의에서 추인하였다(행 15:1-35). 7

구세군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교회 내 직제를 군대식으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성경 자체에는 없지만, 창의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직분들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강도사, 전도사, 전도인, 권사라는 제도가 있다. 또한 순장, 구역장, 목자, 목녀, 성경공부 인도자 등을 세우고 있다. 시대와 상황이 바뀜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시대의 필요를 충족시켜왔다. 따라서 직제의 변화는 성경적인 원리를 적용하면서 창의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것을 시대와 상황의 변화라는 변수 때문에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의 직제는 성경에 있는 직제를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기보다는 그때그때 교회의 형편에 따라서 창의적이고 탄력적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공산국가에서 생존하는 지하교회의 직제나 이슬람 사회에서의 교회 직제는 신앙의 자유가 있는 지역의 교회 직제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회는 계속해서 변모해가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맞게 직제는 창의적으로 탄력적으로 만들어져가야 한다. 물론 성경적인 원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감리교회 시스템과 침례교회의 시스템과 장로교회의 시스템은 각각 성경적인 원리를 적용하면서도 강조의 차이에 따라 그리고 교단적 강조에 따라 다른 모습의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앞으로는 여성의 역할이 많이 기대되는 사회로 더욱 진입할 것이고, 새로운 목회자의 수급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좀 더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아니 이미 교회 안에 깊숙이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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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총회특별취재팀, “[제98회 총회결산] 면직 선교사 해벌 다시 GMS 임원회로” <기독신문> (2013.9.30.)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82423[]
  2. 최승현, “[합동6] 여성 선교사 성례권 부여” <뉴스앤조이> (2018.9.11.)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9627[]
  3. 정훈택, “존재론적 평등성, 기능성 종속성? -우리의 여성 안수불가 논의에 관하여-” <신학지남> 64(3) (1997.9), 264-265.[]
  4. ibid.[]
  5. 권성수, “딤전 2:11-15에 관한 주석적 고찰,” 91-92.[]
  6. 박창환, “여성 안수의 성서적 근거” <새가정> (1984.8.), 33.[]
  7. ibid., 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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