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남성과 여성에 관한 하나님의 창조질서

6. 남성과 여성에 관한 하나님의 창조질서

고린도전서 11:3에서 여자의 머리(κεφαλή)는 남자라고 선언하고 있다. 또한, 11:8에서는 여자가 남자로부터 난 것이지, 남자가 여자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고 표현하였다. 이 표현은 창세기 2:21-22에서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든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더 나아가 11:9에서 여자가 남자를 돕기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지,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표현 역시 창 2:18에서 아담을 위해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을 만드신 것을 두고 하는 말처럼 보인다. 따라서 남자들은 권세 아래 있는 표를 머리에 둘 필요는 없으나, 여자들은 권세 아래 있는 표를 머리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11:10).

이러한 말씀에 근거해서 손석태 교수는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지위에 있다고 보는 것은 성경을 오해한 것이라고 하였다. 1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인 반면,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표현한 고전 11:7에 근거하여 여성의 지위는 남자와 비해 열등하다고 보았다. 2 예수님은 수많은 충성스러운 여성 제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사도로 세우지 않았다고 하면서, 2 여성은 단순히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이유 때문에 가르치는 직분이 제한되었던 것이 아니라, 창조질서에 따라서 남자를 주관하여 가르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여자도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똑같이 되었고 그런 점에서 해방되었다고 하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갈 3:28은 남녀가 동등하게 설교를 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이 없음을 말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3 이러한 견해와 맥을 같이 하면서, 서철원 교수는 다만 여성 안수 시비를 여성 인격의 비하로 연결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고 제안한다. 4 그래서 여성이 남성과 존엄성 면에서는 동등하나 기능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기에, 여성에게는 가르치거나 다스릴 수 있는 직분으로 세워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전 11:12에서는 고전 11:8의 표현을 뒤집는다. 고전 11:8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서 나지 않았다고 선언했는데, 바로 뒤인 고전 11:12에서는 남자도 여자에게서 났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고전 11:8을 근거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거나 부족하다는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갈라디아서 3:28이 구원에 있어서 남자나 여자가 모두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임에는 틀림 없지만, 결과적으로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잇는 자가 되었다면(갈 3:29), 여성 차별적인 관점은 근거가 없다.

현대인들은 머리(κεφαλή)라고 하면 권위, 권세(authority)를 떠올린다. 5 따라서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고 할 때, 남자가 헤드십(headship)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머리가 아니라 신체의 다른 부분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던 고대 세계에서 머리는 권세를 가진 사람을 상징하지 않는다. 6 이러한 사실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에서도 보인다(11:3).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μορφῇ)이시고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시다(빌 2:6). 누가 누구를 지배하거나 상하 관계에 있지 않고 동등한 분이신데, 그리스도의 머리가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였다. 즉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는 표현을 근거로, 여자가 남자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케네스 E. 베일리는 머리는 시작(origin)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7 시편 111:10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머리(시작)”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남자의 시작은 그리스도이고, 여자의 시작은 남자이고, 그리스도의 시작은 하나님이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8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 중에서 누가 권세를 가지고 있거나 누가 복종해야 하는 개념이 아닌, 단순히 창조의 순서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1:4-5에서 머리를 욕되게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케네스 E. 베일리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머리는 대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9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아내들이 아내를 포함한 가정의 대표인 남편의 명예를 수치스럽게 하는 것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0 즉 어떤 여성들은 기도하거나 예언을 할 때, 머리에 가릴 것을 가리지 않았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남자가 머리에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을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하였다. 남자가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는 것은 모자를 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피스 두루마리와 같은 옷을 잡아당겨 머리부터 걸쳐 입는 것을 의미한다. 8 이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런 식으로 입는 것은 고린도에서 출토된 석상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종교 제의를 인도하는 사람들의 복장이기 때문으로, 이교도식 제의 방법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8 더 나아가 이런 식으로 옷을 입는 것은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인데,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참된 머리(고전 11:3)인데 자기 자신을 높임으로써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머리에 쓰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인 남편을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 된다. 당시에는 처녀, 과부, 창녀의 경우에만 머리에 쓰지 않았고, 남편이 있는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머리에 써야만 했다. 11 미쉬나 Ketubbot 6:6에 의하면, 여자가 공적인 자리에서 머리를 가리지 않으면 이혼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12 머리에 무엇인가를 가리지 않으면 마치 남편이 없는 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되어, 자신의 남편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여성들이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경우가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머리카락을 땋아서 예쁘게 장식하는 헬라-로마 문화를 선호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복음이 주는 자유를 과도하게 받아들여서 머리를 가리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으로 해석했을 가능성도 있다. 8 그래서 고린도전서 11장의 권고는 디모데전서 2:9에서 땋은 머리(πλέγμα)를 금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13 물론 이러한 바울의 권고는 우리 시대에는 적용될 수 없다. 오늘날에는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쓰지 않는 것이 그 당시의 문화에서 가졌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이 여자가 머리에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면서 언급한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표현은 남자가 여성 위에 있는 권세를 가진 존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남편이 여성을 포함한 한 가정의 대표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거나 가르치는 직분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볼 수 없다.

이러한 해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자는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두라고 한 고린도전서 11:10이다. 많은 주석가들이 고전 11:10을 여성들이 남성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머리에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한다. 예를 들어, 권성수 교수는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상태에서 예언이 허용된 것은 남자의 권세에 순종하는 범위 내에서 예언한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14 남자와 여자의 역할의 차이와 남자가 헤드십(headship)을 갖는 것은 타락 이전에도 이미 있었던 것이라는 것이 권성수 교수의 주장이다. 15 하지만 고전 11:10은 여성이 남성의 권세 아래에 있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냥 권세를 머리에 두라고 요구할 뿐인데, 그 권세가 하나님의 “권세”인지, 남자의 권세인지, 아니면 기도하고 예언할 “특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성이 자신의 머리를 자신의 뜻대로 할 “권리”인지 분명하지 않다. 16 오히려 케네스 E. 베일리는 마치 여왕이 왕관을 쓰듯 머리 위에 무엇인가를 쓰는 것은 여성이 예배를 인도할 때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7 고린도전서 11:10에 있는 표현, ὀφείλει ἡ γυνὴ ἐξουσίαν ἔχειν ἐπὶ τῆς κεφαλῆς는 단순히 “여성은 머리에 권위(권세)를 두라”는 뜻이다. 여성이 권세 아래 있다는 의미로만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한국어 성경은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라고 번역하여, 여성이 남자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것처럼 번역하였다.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11:10이 확실하게 여성이 남성의 권세 아래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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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손석태, “여성 안수 성경적인가?,” 253.[]
  2. ibid.[][]
  3. ibid., 253-254; 서철원, “여성안수 시비” 신학지남 72(1) (2005), 6; Piper & Grudem, 50 Crucial Questions: An Overview of Central Concerns about Manhood and Womanhood, 43-44.[]
  4. 서철원, “여성안수 시비,” 9.[]
  5. Joseph A. Fitzmyer, “Another Look at KEΦAΛH in 1 Corinthians 11:3,” New Testament Studies 35 (1989): 32-59; Joseph A. Fitzmyer, “Kephale in 1 Cor. 11:3,” Interpretation 47 (1993): 32-59; Wayne Grudem, “The Meaning of κεφαλή (‘Head’): A Response to Recent Studies,” Trinity Journal 11 (1990): 3-72.[]
  6. Robert Scott Nash, 1 Corinthians (Macon: Smyth & Helwys, 2009), 322.[]
  7. 케네스 E. 베일리,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54-455.[]
  8. ibid.[][][][]
  9. Garland, 1 Corinthians, 515-516; A. C. Perriman, “The Head of a Woman: The Meaning of KEΦAΛH in 1 Cor 11:3,”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45 (1994), 602-622.[]
  10. Nash, 1 Corinthians, 323.[][]
  11. ibid., 324.[]
  12. 케네스 E. 베일리,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52.[]
  13. Gloer, 1 & 2 Timothy-Titus, 141-142.[]
  14. 권성수, “딤전 2:11-15에 관한 주석적 고찰,” 89.[]
  15. ibid., 119.[]
  16. Nash, 1 Corinthians, 330-331.[]
  17. 케네스 E. 베일리,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68-469.[]

2 Comments

  1. 박범종

    이국진 목사님
    논문 공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성경적 관점으로 교회사적 사실과 시대적 요구를 아우르며 균형있는 연구 결과물입니다.
    우리 교단이 여성사역자를 세우는데 좋은 지침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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