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여성은 교회에서 침묵해야 하는가? (고전 14:34-35)

요엘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줌으로 말미암아 아들들과 딸들이 그리고 남종과 여종들이 예언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욜 2:28). 그리고 이러한 예언은 오순절날 성취되었다(행 2:17-18). 이것은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의 영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임하여 그들이 예언을 하는 선지자적인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이다. 물론 구약에서도 여사사 드보라(삿 4:4-5), 여선지자 훌다(왕하 22:14-15)와 같은 여성 지도자들의 출현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여성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예언을 하는 선지자적 소명으로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바로 연이어서 발생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을 통해서였다.

초대 교회 예배에서는 성도들이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자신이 깨달은 바를 예배 가운데서 말하는 예언의 은사는 남자들에게만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주어졌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는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예언을 함에 있어서 많은 혼란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서로 분별없이 예언하는 것이었다. 질서를 따라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예언을 하는 것은 아주 큰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14장에서 예언하는 사람들은 둘이나 셋이 말해야 하고, 그 예언이 바른 예언인지 분별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먼저 예언하면 다른 사람은 잠잠히 기다리라고 권고하였다(고전 14:29-30).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예언을 할 때,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예언함으로써 비방을 받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머리를 가리고 예언하라고 권면하였다(고전 11:5-6). 예언의 목적은 고전 14:31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즉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고,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배우고 권면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

.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여성이 예언을 할 수는 있으나, 바른 태도로 할 것을 권면한다(11:5-6). 그런데 조금 뒤에 가서는 아예 여성은 교회에서 말하지 말고 잠잠하라고 하였다(고전 14:34-35). 같은 고린도전서에서 11장에서는 여성이 예배 중에 예언을 할 수 있다고도 하면서, 14장에서는 말하지 말고 잠잠하라고 한 이 모순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Thomas Charles Edwards는 바울 사도가 11장에서 여성에게 허용했던 입장을 14장에서 번복하고 자신의 진짜 의도를 나타낸 것으로 이해한다. 1 반면 H. Lietzmann은 예성의 예언이 허용되었던 고전 11장은 작은 모임의 경우이고, 고전 14장에서 가르침이 금지된 것은 전체 교회의 예배에서 금지된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2 하지만 이러한 H. Lietzmann의 견해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

반면 John Piper와 Wayne Grudem은 예언은 가르치는 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3 이들에 의하면, 여성들이 예언을 할 수 있었고, 그러한 예언을 통해서 남성들이 배울 수도 있지만,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배움일 뿐이고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의하면, 엡 4:11에서 예언을 하는 선지자와 가르치는 목사와 교사는 각각 다른 카테고리로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4 롬 12:6-7과 고전 12:28에서 가르치는 은사와 예언의 은사가 다른 종류로 제시되어 있다고 근거를 댄다. 4 여성 안수 반대론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이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5 가르치거나 어떤 공적인 의사 전달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6 이 구절에 근거하여 여성이 당회나 노회와 같은 치리회의 구성에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John Piper와 Wayne Grudem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근거가 약하다. 엡 4:11에서 사도는 목사와 교사와는 또 다른 카테고리로 되어 있지만, 사도도 역시 가르치는 일을 한다. 은사의 열거는 완전히 서로 다른 카테고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영역이 중복될 수 있다. 고전 14:6에서는 방언으로만 말하고 계시로(ἐν ἀποκαλύψει)나 지식으로(ἐν γνώσει)나 예언으로(ἐν προφητείᾳ)나 가르치는 것으로(διδαχῇ) 말하지 않으면 유익이 없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열거된 4개의 표현은 각각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내용을 네 가지로 강조하여 표현한 것(hendiatessera)으로 보아야 한다. 즉 가르치는 것과 예언이 서로 다른 영역이 아니다. 더 나아가 예언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듣는 이로 하여금 책망을 듣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고전 14:24). 더 나아가 바울 사도는 데모데를 가르쳤는데, 그것을 예언으로 지도한 것(κατὰ τὰς προαγούσας ἐπὶ σὲ προφητείας)이라고 표현하였다(딤전 1:18). 따라서 예언이 가르침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근거가 약하다.

많은 신약 학자들은 고전 14:34-35이 바울의 원 본문에는 없었던 것이며 나중에 첨가된 본문이라고 본다. 7 그러니까, 이 본문은 바울 사도가 쓴 원래의 문서에는 없었으나, 후대에 첨가되었다고 본다. 아마도 필사자에 의해 여백에 기록되었던 내용이 본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게 보는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제시된다. 첫째, 바울 사도가 같은 편지 내에서 상반된 주장을 펼친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둘째, 14:34-35는 논리적인 흐름을 방해하고 있으며, 이 구절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논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셋째, 여기에 사용된 표현들이 바울에게는 상당히 낯선 표현들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율법에 이른 것 같이”라는 표현은 바울에게 기대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는 점이다. 8 넷째, 34-35절이 40절 이후에 배치되어 있는 후대의 사본들이 일부 존재한다(D, F, G. 88).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논란을 야기시켰다. 9 사본의 증거들을 살펴보면, 이 구절이 아예 없는 사본은 없다. 다만 따라서 여백에 있던 내용이 본문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 구절이 바울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사본학적 지지가 약하다. 10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의 주제와 어휘와 다르다고 하는 주장은 학자들에 따라 그 의견이 다르다. 11

또 한편으로는 이 구절은 고린도에서 널리 유행하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바울은 종종 고린도에서 흔히 회자되는 말을 인용한 후에 그것을 반박하곤 하는데(1:12; 2:15; 6:12; 10:23; 6:13; 7:1; 8:1, 4, 8; 11:2; 15:12), 여기서도 고린도에서 흔히 하는 말을 인용한 후에, 14:36에서 여인들을 침묵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오직 너희들(남성)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줄 아느냐고 반박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12 이러한 관점은 가능한 해석이긴 하지만, 다른 인용구와는 달리 길게 인용하고 있다는 점과 13 교회 내에 질서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전체적인 흐름에 비추어볼 때 왜 여기서 여성들의 침묵을 주장하는 세간의 말을 인용하고 반박해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점, 그리고 이 단락이 절제 없이 이루어지는 예언을 억제하는 맥락이라는 점을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4

이 구절은 당시의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이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남편에게 질문을 던지는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침묵해야 했었던 것을 가르치고 있다. 방언과 예언을 할 때 차례를 따라 질서 있게 하여 혼란스럽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이 시작하면 다른 사람은 잠잠할 것을 요구하였다(고전 14:28). 14 또한 다른 사람이 계시를 말하면 먼저 하던 자가 잠잠해야 했다(고전 14:30).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고전14:33). 여자가 교회 내에서 잠잠해야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편이 교회 내에서 말을 했을 때, 그런 남편의 생각을 반박하고 따지는 것은 당시의 문화권에서는 수치스런 일로 받아들여졌다. 15 남편에게 묻는다고 할 때 사용된 헬라어 단어 ἐπερωτάτωσαν은 대제사장이 예수님에게 심문했을 때 사용했던 단어와 같다(막 14:60-61). 16 또한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권위를 거부하면서 세례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물었을 때 사용된 단어이다(막 11:29). 그래서 고전 14:34-35에서 여성이 남편에게 묻는 것은 과분히 남편의 권위에 도전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남편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자신의 남편을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고, 양보하고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17

또한 이 구절은 예배를 드리는 동안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여, 그렇게 예배 시간에 떠들지 말고 집중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18 여기서 부끄러운(수치스러운, shameful) 일(αἰσχρός)이라는 표현은 불법(ἀνομί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불법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인 반면, 부끄러운 일은 당시의 문화에서 명예로운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케네스 베일리는 어제 그 친구를 만났으니 굳이 오늘 또 만날 필요가 없다는 아내에게 그 친구가 병에 걸렸으니 그걸 모른 척 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대답하는 상황으로 설명한다. 19 오늘 찾아가지 않는 것을 불법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바울은 여성들이 예배 도중에 묻는 것을 불법이라 말하지 않고 수치스런 일이라고 표현했다. 예배가 진행되는 가운데, 서로 떠들며 질문하여 예배를 방해하거나 남편이 한 말에 대하여 따지고 묻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여성이 전혀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제한 규정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고전 11:5는 여성도 예언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미 초대교회 내에서 여성이 가르치는 사역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전 14:34-35는 자신의 남편의 예언에 도전하고 반박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어떤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말한 내용이, 특정한 주제에 대한 그의 견해의 전체적이고 확정적인 진술로 간주될 수는 없다”고 한 Ben Witherington 20의 말처럼, 바울은 여기서 특수한 상황 가운데 여자들이 잠잠할 것을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여성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

이전 글: 5.4 여성의 가르침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의 금지(딤전 2:11-15)

다음 글: 6. 남성과 여성에 관한 하나님의 창조질서

.

 56 total views,  2 views today

--[註]---------------------------
  1. Thomas Charles Edwards, A Commentary 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London: Hodder & Stoughton, 1885), 381.[]
  2. David E. Garland, 1 Corinthians (Grand Rapids: Baker, 2003), 665. n.16.[]
  3. Piper & Grudem, 50 Crucial Questions: An Overview of Central Concerns about Manhood and Womanhood, 40.[]
  4. ibid.[][][]
  5. 박윤선, <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 (영음사, 1991), 222.[]
  6. 손석태, “여성 안수 성경적인가?,” 255.[]
  7. 김세윤,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두란노 ebook, 2016). 3장 05; 고든 피, <NICNT 고린도전서> (부흥과개혁사, 2019), 888-895; William A. Beardslee, First Corinthians: A Commentary for Today (St. Louis: Chalice Press, 1994), 140; Fiorenza, In Memory of Her, 227-230; Richard B Hays, First Corinthians (Louisville: John Knox Press, 1997), 244; David G. Horrell, The Social Ethos of the Corinthian Correspondence: Interests and Ideology from 1 Corinthians to 1 Clement (Edinburgh: T&T Clark, 1996), 186-189; Richard A. Horsley, 1 Corinthians (Nashville: Abingdon, 1998), 188-189; Jerome Murphy-O’Connor, 1 Corinthians (Wilmington: Michael Glazier, 1979), 90-92; Robin Scroggs, “Paul and the Eschatological Woman,” in The Text and the Times: New Testament Essays for Today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3), 71; Carolyn A. Osiek & David L. Balch, Families in the New Testament world: Households and House Churches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1997), 117; Graydon F. Snyder, First Corinthians: A Faith Commentary (Macon: Mercer University Press, 1992), 184-185; G. W. Trompf, “On Attitudes Toward Women in Paul and Paulinist Literature: 1 Corinthians 11:3-16 and Its Context” 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 42 (1980), 215; William O. Walker, Jr. Interpolations in the Pauline Letters (New York: Schefield Academic, 2001), 109;[]
  8. 고든 피, <NICNT 고린도전서>, 888-895. Gordon D. Fee, God’s Empowering Presence: The Holy Spirit in the Letters of Paul (Peabody: Hendrickson, 1994), 274.[]
  9. 서철원, “여성안수 시비,” 6.[]
  10. D. W. Odell-Scott, “Editorial Dilemma: the Interpolation of 1 Cor 14:34-35 in the Western Manuscripts of D, G and 88” Biblical Theology Bulletin 30 (2000), 68-74; Garland, 1 Corinthians, 666; 최갑종, “최갑종 총장, 여성안수 반대할 성경적 근거 없다”[]
  11. Raymond F. Collins, First Corinthians (Collegeville: The Litergical Press, 1999), 515-517.[]
  12. Robert W. Allison, “Let Women Be Silent in the Churches (1 Cor 14.33b-36); What Did Paul Really Say, and What Did It Mean?”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32 (1988), 27-60; Neal M. Flanagan & Edwina Hunter Snyder, “Did Paul Put Down Women in 1 Cor 14:34-36?” Biblical Theology Bulletin 11 (1981), 10-12; Chris U. Manus, “The Subordination of Women in the Church: 1 Cor 14.33b-36 Reconsidered,” Revue Africaine de Théologie 8 (1984), 183-195; Odell-Scott, “Editorial Dilemma,” 69; Charles H. Talbert, Reading Corinthians (New York: Crossroad, 1987), 92-93.[]
  13. Garland, 1 Corinthians, 667.[]
  14. 최종호, “여성들의 목회 참여를 위한 성경적-신학적 고찰,” 183.[]
  15. Anthony C.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Grand Rapids/ Cambridge: Eerdmans, 2000), 1158-1161; Garland, 1 Corinthians, 670.[]
  16. ibid., 1159.[]
  17. Garland, 1 Corinthians, 667-675.[]
  18. 케네스 E. 베일리,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새물결플러스; 2017), 623-628.[]
  19. ibid. 629.[]
  20. Ben Witherington, Women in the Earliest Church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p.25. 케네스 E. 베일리,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622에서 재인용.[]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